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법
『여자는 모른다』(이우성 지음, 중앙 북스 펴냄, 2013)를 읽은 나의 소감은 ‘아 솔직하다!’다.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남자 수다에 한껏 빠져버렸다. 어제부터 틈틈이 시작한 이 책을, 휴가인 오늘 저녁에 다 읽어버렸다. 딱히 이 책을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리고 딱히 밑줄을 그을 것도 없지만, 읽고 나서 ‘야 여자는 이래!’라고 술술술술 얘기하고픈 맘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엊그제 대학 친구 하나가 밤 열 시가 다 되어, 책 읽고 있다는 나를 찾아, 저 외대 근처에서부터 마포까지 왔더랬다. 늘 있는 남자친구와의 불화에, 집으로 그냥 들어갈 순 없고, 그렇다고 나한테 뭔가 얻어갈 것도 아니지만, 그저 같은 처지라는 이유(둘 다 미혼이니까) 하나로,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먼 길을 행차한 거였다. 다음 날이 책모임 발표인 줄 알았던 나는 마음이 초조했지만, 그 걸음의 무게를 알기에 조용히 책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두 번 들었던 얘기가 아니지만 그녀의 고민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 역시 애인이 있었을 당시,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말할 수 없는 공허함과 불만들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을 괴롭혔으니까.
친구: 오빠가 회사에서 사내 교육 같은 거를 하는데, 이번에 좀 잘했나 봐. 칭찬도 좀 듣고 인정받으니까 좋은지, 오늘 신나서 얘기하더라. 근데 난 거기에 맞장구치며 좋아해줄 수가 없었어.
나: 잉? 왜?
친구: 나는 안중에도 없더라고. 내 반응을 살피며 얘기하는 게 아니라, 혼자 신났어. 뭐 혼자 신나 하는데 거기에 딱히 반응하기가 싫은 거야. ㅠㅠ
나: 야, 너도 못 됐다 야. 나같아도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애인한테 젤 먼저 자랑하고 싶겠다. 남자면 오죽하겠어?
친구: 근데 그게 그에게 나는 안중에 없어. 내가 별 반응 없으니까, 자기 얘기 다~하고는, 그만 집에 갈까? 그러는 거야. 너무 짜증 나서 집에 보내고 왔어.
이 일 전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단다.
친구의 생일이었다. 남친은 딱히 생일 준비를 못했다. 준비 못한 거에 미안했는지, 명품백 하나 정도는 사 줄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친구도 명품백 운운하는 그런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 날은 남친의 허세에 동참했고, 고가의 명품백을 백화점에서 골라 받았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남친은 그만한 고품격 가격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어쩌다 그렇게 지불을 마치게 되자, 심사가 꼬였는지 어쨌는지 너도 역시 다른 여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명품 밝히는 여자’ 취급을 하며 속물 취급을 하더란다. 친구는 너무 속상하고 짜증 나서, 전화로 싸우는 도중 인터넷 뱅킹으로 남친이 지불한 금액 그대로를 쐈단다. 남친은 다시 자존심이 상하고, 그녀 또한 내 돈으로 그 비싼 명품백 산 격이니 머리가 쭈뼛 서고. 마지막 남친의 말은 아주 가관으로 확인사살이다.
“마음에 안 들면 환불을 하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한마디 말에 우리의 친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사랑한다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다 알아주기를,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남자이기를, 미련스럽게도 기대한다. 아마 우리가 그래서 시집을 못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간 거다, 슬프게도.
물론 내 친구도 문제다. 명품 좋아하면 어떻고, 속물이면 어떤가. 내가 좋으면 그만인 것을, 자신의 모습에 그녀 또한 당당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는 잘 들어주는 여자지만, 잘 들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니 내 속 깊은 이야기까지 들어주고픈 남자를 만나고 파서, 더 열심히 듣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남자 중 그런 남자는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을지 모른다. 그녀가 이성적으로 느끼지 않을 뿐.
그녀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 기도하다. 우리는 대체 무엇으로 남자라고, 이성이라고 착각한단 말인가. ‘잘 들어주는 남자’가 이상형이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깨달은 바는 이 세상에 그런 남자는, 내가 매력을 느낄 만한 남자는 없다는 거다. 왜냐면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니까.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들어주고 맞춰주는 남자, 당연히 있다. 하지만 ‘맞춰’ 주는 거지, 여자처럼 이해하는 것은 아닐 거다. 왜냐면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니까. 우린 서로 다른 행성에 있으니까.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라고 그게 사랑이라고들 한다. 근데 그게 어디 쉬운가. 내가 봐온 걸로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게 인간의 한계인 것을.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오늘도 별 것 아닌 걸로 싸운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엄마 아빠가 허구한 날 나이 육십이 넘도록 싸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대화들을 하는 것을 보면, 죽는 날까지 이해하지 못할 건 자명하다. 그래,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냥 죽을 때까지 싸우며 알아가자. 그것이 사랑이라면.
위 글은 2013년, 결혼 전 썼던 글이다. 사건의 주공인 친구도, 나도 결혼의 문에 진입했다. 위 글을 다시 읽으며, 참 서로가 이기적이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서로 사랑받고 싶어 아득바득 우기고 있는 모양이 애처롭기도하다. 친구는 위 글의 주인공 남자와 결혼에 이르렀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며 사랑하고 있다. 이혼까지 생각하며 결혼하자마자 큰 위기를 겪은 그녀는 얼마 전 잘 살고 있느냐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그냥 일부분 포기하고 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