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뭐라고

by 수박씨

생일이라고 축하해 주는 감사의 문자들과 만남으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이제 저녁은 가족과의 시간이었고, 아직 초등 저학년인 아이들과 이벤트라고는 일자무식인 남편을 고려해 미션을 일러줬었다. 아이들에게는 편지를, 남편에게는 양가 어머님이 보내주신 김치 정리와 머리 펌을 해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서프라이즈를 해줄 거라고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내심 기대했다. '놀고 온다는 아이들의 연락과 아직 들어오지 않은 남편이 혹시 만나서 서프라이즈를 계획하고 있는 건가?'

역시.. 착각 중의 착각이었다. 아들은 수요예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친구와 게임하느냐고 들어오질 않았고, 저녁 9시가 되도록 딸들도 엄마에게 편지 한 줄 쓰지 않고 있었다. 스멀스멀 화가 차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부랴부랴 집에 와서 편지를 써댔다. 미안하다는 아들, 사랑한다고 화를 풀라는 딸들의 편지에도 서운함이 멈추질 않았다. 그 서운함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고, 가족들도 기분이 좋지 않게 집을 나섰다. 생일이 뭐라고 이렇게 서운한가.. 아이들은 내가 왜 이렇게 서운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깔깔대기만 했다. 초등학생이면 이 정도의 공감능력은 있어야 되는데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운 걸까. 회의감이 몰려왔다. 남편은 본인이 아이들과 계획했어야 했는데 안 해봐서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나를 달랬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질 않았다.

아이들이 가고, 한줄기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도대체 몇백 번의 서운함을 견디셨냐고, 저는 벌써부터 섭섭해서 눈물 난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머님은 호호 웃으시며,


"그래 섭섭했겠다~ 우리 애들 아직 어려서 모르지 뭐. 그래도 남편이 달래줘서 다행이네. 남편마저 모르면 더 서럽지. 지금은 마음이 아픈 정도는 아니고 상한 정도지. 벌써 아프면 안 돼~"


#1. 하소연할 어머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속상할 때 어머님과 얘기하고 나면 마음이 풀어지니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2. 이벤트는 모르는 남편이지만 해달라는 건 최대한 노력하는 남편이어서 감사합니다. 적시적기에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는 남편도 흔치 않지!

#3. 늦었지만 진심으로 편지를 써준 아이들에게, 그래도 감사하렵니다. 다시 잘 교육시켜 봐야겠습니다.


어쨌거나 감사하려고 마음을 먹기만 하면 시련이 찾아온다.

마음을 먹지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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