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새해 100배 즐기기

by 수박씨

작년 구정이 지난 뒤 이사를 왔으니, 1월 1일을 부산에서 맞이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새벽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바다가 코앞인데 해 뜨는 건 봐야지’ 하는 마음에 게으른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이들도 데려가 보려 했지만, 잠이 더 간절했던 아이들은 그대로 두고 남편과 둘이 송정 바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새해에 일출을 보러 나서는 일은 4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분명 한 번쯤은 있었을 법한데,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그런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송구영신 예배 후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새해인지 헌 해인지도 모른 채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하던 기억뿐이었다.


그런 내가, 우리 부부가, 이른 아침 눈을 떠 사람 많은 바닷가로 향하고 있었다.

해운대로 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차량들을 지나 우리는 송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벽부터 나와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 그만큼 북적이는 차들과 사람들. ‘7시 반쯤 해가 뜨니 6시 반에만 가도 충분하겠지’ 했던 생각은, 이런 날 집 밖으로 나와 본 적 없는 사람의 순진한 계산이었음을 곧 깨닫게 했다.


그래도 송정 바닷길 끝자락을 천천히 오르다 보니 다행히 주차할 자리가 하나 보였다. 대형 카페가 있었고, 꼭대기층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카페 사장님은 혹여 커피는 마시지 않고 해만 보고 갈까 봐 노심초사한 얼굴로 손님들을 줄 세우고 계셨다. 이미 내려져 있던 6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3층 야외 테라스에서 해 뜨는 시간을 기다렸다.


날은 몹시 추웠고, 7시 30분은 생각보다 더디게 다가왔다. 해가 뜰 듯 말 듯,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만 가득 번져 있었다. 손이 시려도 핸드폰을 놓지 못한 채 찰나를 놓칠 새라 준비하고 있는데, 문득 ‘아이들을 데려왔으면 엄청난 원성을 샀겠지’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침내 동그란 해가 모습을 드러내려는 순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해 하나가 온 세상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그 빛을 바라보다가, 하나님은 정말로 계시겠구나, 빛처럼 세상 만물을, 내 속속들이를 다 알고 계시겠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일출을 보고 난 뒤에는 돼지국밥을 먹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1월 1일 이른 아침, 우리가 가려던 가게들은 휴무이거나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전에 사두었던 미포 대구탕을 먹기로 했다. 아직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산에 가자, 도서관에 가자 여러 계획이 오갔지만, 결국 가족 모두 다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느지막이 일어나니 새해를 맞아 몸부터 정돈하고 싶어졌다. ‘목욕탕’이 떠올랐다.

딸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협조는 쉽지 않았다. 바나나 우유를 사주겠다는 약속에, 다이소에서 사고 싶어 하던 ‘어드벤트 캘린더’를 사주겠다는 제안까지 더해 겨우 목욕탕으로 향했다. 부산의 목욕탕은 어딜 가나 온천물이라고 했고, 절반 이상은 바다를 품고 있었다. 한화리조트 안에 있는 사우나 역시 바다 뷰였다.


자판기 외에는 매점이 없어 아이들이 바라던 바나나 우유는 사주지 못했지만, 작고 깔끔하고 있을 건 다 있는 목욕탕이 마음에 들었다. 샤워부스 거울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씻고 있으니, 바다 위 어딘가에 서서 씻김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이 아니라 바다가 나를 씻어 주는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아이들이 원하던 다이소 물건을 사고 집으로 돌아와 ‘좀비딸’을 보며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가정예배를 드리며 한 해의 소망을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2026년의 첫 발을 내디뎠다.


부산에서 맞이한 첫 새해는,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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