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기회

by 수박씨

'아버님의 요양비로 돈을 벌러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림길 앞에서 나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해 보기로 마음먹고 집에 남기로 결심했다. 말씀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나는 기꺼이 순종했다.

하지만 그런 결심 이후에도 밤이면 불안한 손으로 사서이마을 카페를 뒤적였다. 주말이나 평일에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공고문을 캡처해 남편에게 보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한 번 해볼까?”

그런 날들이 여러 번 반복됐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신,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부지런히 궁리했다. 그동안 실패했던 주식 계좌를 마침내 개설했고, 동생이 권하던 주식을 두 주 사 보며 깬 적금을 조금이라도 불려보려 애썼다. 이사 올 때 할부로 샀던 에어컨과 냉장고 빚도 정리할 계획을 세웠고, 생활비 예산을 다시 0에서부터 써 내려가며 앞으로의 지출을 하나하나 가늠해 보았다.


결론은 분명했다. 다섯 식구가 한 달 100만 원으로 살아야 했다. 식비에, 애들 준비물, 책, 생필품까지..여태까지 200만원 넘게 지출을 해왔던 나였다.

가능할까…?
“일주일에 20만 원씩 쓰면, 승산은 있어.”

부부는 그렇게 입을 모았다.


그러던 중, 정말 예기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카톡에 한 통의 메시지가 와 있었던 것. 예전에 도서관에서 함께 일했던 사서 보조 선생님이었다.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연락할 일은 없던 사이라 의아했다.

‘무슨 일이지? 부산에 놀러 오나? 아니면 다른 도서관으로 옮겼나?’

여러 생각을 하며 전화를 걸었다.


용건은 뜻밖이었다.아이가 5학년에 올라가는데 화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남편이 베트남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어 5월이면 아이와 함께 베트남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대입에서 논술 전형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서논술 수업을 고민하다가 문득 내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어차피 해외로 나갈 예정이라 부산에 있던 나도 ‘노 프라블럼’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 화상 수업이라는 방법도 있구나.’

내가 생각한 범위를 훌쩍 넘어 기회는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나의 열심이 멈춘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셨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미 해보았던 일이었고, 학생은 한 명이었으며,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할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일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공급하심이라고 믿는다.


특별한 기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상황이 넉넉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잠잠히 있었을 때, 필요한 만큼의 길이 조용히 열렸다. 그 과정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첫 수익은 하나님께 모두 드렸다.

그분의 공급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겠다는 나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2026년의 첫 달은 100만 원으로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부산에서 새해 100배 즐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