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하고 종종 과거의 후회되던 일을 회상하면, 진로적인 면에는 이랬다.
“그냥 공무원 준비나 할 걸..”
전문대 지적 정보학과를 나와 대부분의 진로는 공사나 공무원이었다. 그때의 나는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하찮아 보였으며, 간판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 밖에는 없었다. 그리하여 편입도 했고 문헌정보학과라는 새로운 간판에 성공했고, 나름 만족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친구들의 진로는 여전히 공무원이 많았다. 기업체 자료실, 대학도서관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거나 TO가 없었고, 대부분 도서관 외주업체나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나는 그 뻔하디 뻔한 공무원의 길이 싫었다. 친구들이 공무원 준비를 하며 힘겨워할 때, 대학도서관의 행정조교로 어렵지 않은 일을 하며 진로를 탐색했고, 그러던 중에 k사의 모집공고가 눈에 띄어 지원하게 되었다.
CP(Contents Provider) 직이었고, 북소믈리에라고도 불렸으며, 신간도서를 소개하는 업무였다. 매력적으로 보였고 실제로 지원자도 많아 거의 100: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 뛰어난 스펙과 장기를 지닌 지원자들 사이에서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던 나는, 풀이 죽어 다음 취업준비를 위해 학원 수업을 받고 있었고, 느닷없는 합격 전화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간 소개도 하고, 마케팅 요소인 회사 블로그에 글 연재도 하고, 외부 매체에 기고도 하면서, 적은 월급보다도 일이 동아리처럼 재밌었다. 동기들도 좋았고 선후배도 상사도 크게 어렵거나 불편함 없이 즐거웠다. 입사 후 2년 정도까지는.
직책이 붙고, 타 부서와의 알력싸움(이라기도 뭐하다.. 일을 거의 가져오기만 했으니까..)으로 불편함도 알고, 후배들의 원성도 듣고, 적은 급여의 불평도 늘어날 때쯤, 책을 읽고 쓰는 업무 따위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고, 같은 자리로는 갈 수 없어 고객센터로 오게 되었다. 이렇게 고객센터에 일하고 있노라니 무엇하러 대학에 가고, 편입을 하고, 돌아 돌아왔나 후회가 몰려왔다.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대기업이나 잘 나가는 회사 다니다가도 아이 때문에 포기하고 스스로 경단녀가 되고, 재취업이 어려워 보험사나 보육 교사로 일하는 실정인걸 보면, 직급 인정받고 일하고, 단축근무하게 해주는 회사에 감사해야 할지도.
공무원 인기 많은 이유는 다 있다. 경단녀 안되고 휴직 길게 쓸 수 있는 직종은 공무원밖에는 없으니. 공무원 공부 좀 끝까지 해볼걸. 뻔한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고, 보장있는 길이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