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힘든 민원
부부 사이에도 매뉴얼이 있다면.
진상 고객이 되었든 예민하고 까칠한 고객이 든 간에 어짜피 남이고 다시 볼 일 없지만, 가족의 민원은 이성적인 머리도 매뉴얼도 없어 불안하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특히 남편의 민원은 재발의 우려도 많고,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싸움으로 번진다. 가장 난제다.
우린 늘 비슷한, 별 것 아닌 주제로 시작하여 이전에 말하지 못하고 참았던 내용까지 끄집어내 사건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심리학적 매뉴얼로는 싸움이 생긴 사건 외에는 끌어들이지 말 것, 사건을 말하되 사람의 인격까지 모독하지는 말 것, 감정을 참을 수 없으면 잠시 쉬었다 갈 것, 이 원칙일 거다. 모르고 싸우는 게 아니라, 아는데도 감정이 먼저 튀어나가는 것이 문제다. 절대 질 수 없는 마음.
고객이라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맞대응하고 싶어도 꾹 참았을 거다. 자존심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제 같은 경우도 그랬다. 이전 상담원의 오안내로 상담원을 직접 보고 얘기를 들어야겠다며 고객센터를 찾아오겠다는 고객이 있었다. 이 고객을 대응하던 중, 고객은 나의 긴 말을 자르며, '네 , 아니오'라고 먼저 대답하라며 재촉했다. 반말까지 해가며 '네, 아니오 먼저 해야지'라고 하는 고객의 무례함에도 입도 뻥긋 못하고 참아야 했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특히 남편에게는 그 '참음'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 한 마디 하면 그에 걸맞은 사건 하나는 얘기 해야 했고, 남편도 지지 않았다. 남편은 우리가 '똑같아서' 싸운다고 했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으르렁대는 우리에게도 해결책이 있을까?
남편은 계속 있으면 더 싸울 것 같다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차라리 잘됐다 싶어 그렇게 두었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던 중 첫째와 둘째가 자꾸 싸우고, 급기야 서로가 싫다고 말했다. 나는 극약처방이라며 아이들에게 '00야 사랑해'라고 말하라고 했다. 첫째 아들은 금방 '사랑해'라고 했으나, 둘째 딸은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듯 입을 아주 조금 열고 복화술처럼 '스릉흐'라고 했다. 그리고는 오빠의 적극적인 동생 챙김으로 사이는 한결 좋아졌더랬다. 어쩜 우리 부부와 이렇게 비슷한 건지. 둘째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 가족 단체 창에 동영상을 띄웠고, 집에 돌아온 남편이 그 동영상 이야기를 하며 '사랑해'하고 우리도 화해하자 했다. 나는 우리 딸내미처럼 화답은 안 하고 그저 웃고 넘겼다.
아마도 우리의 싸움은 진행형이고, 반복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 싸움이 반복되는 것처럼,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사는 것이 부부이고 가족이고 인생일까? 싸움도 매뉴얼대로 할 수 있다면, 감정은 절제하고 사건 해결에 중점을 둔다면, 참말로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