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온 메일 한 통. 매 월마다 평가되는 나의 콜 평가표다. 첫인사, 화법, 음성, 경청과 공감, 효율성, 신속성, 적극성, 끝인사 등으로 나누어 점수를 매기는데, 이번에는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혹시 잘못된 건지 걱정하는 고객 말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였음.
공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 또는, 그러한 기분, 이라고 사전적 의미로 명시되어 있다.
교육 담당하시는 분은 '신입이 가장 친절하다'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아마도 '공감'능력이 과하게 발휘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객이 모르는 것은 나도 모르고, 고객이 곤란한 건 나 역시 곤란함을 느끼던 시절.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문의도, 항의도 비슷한 내용이 많기에 점점 무디어진다. 자연히 공감능력 결여 증상이 나타나고, 기계적으로 답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고객에게 이런 얘길 들었다.
제 얘길 들을 생각이 없으시네요.
전화연결이 잘 안 되고 상담원 연결이 안 보인다는 서두였는데, 주문건부터 확인하려던 나는 고객의 불편사항에 대한 반응은 접어두고 본인 확인을 요청하니 고객은 더 펄펄 뛰었다. 해당 부분에 대한 사과드리고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긴 했나보다. 싫다는 얘기를 허구한 날 들으니 공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집에서는 또 얘기가 다르다. 기계적인 답변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이 나온다. 익숙한 패턴의 갈등들에 툭, 툭하고 튀어나오는 감정들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차라리 감정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저 담담히 바라볼 수 있다면 울 일도, 화날 일도, 서운하고 속상할 일도 없을 텐데. 남편과의 갈등이 잦아지는 요즘, 소설 아몬드의 감정을 못 느끼는 주인공 윤재가 부럽기만 하다.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 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 [아몬드] 중에서
공감하지 못하거나, 과잉 반응하거나. 내 감정관리에 문제가 있는 걸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가정에 불화가 잦아 바깥일도 어려운 건지, 바깥일에 힘이 부쳐 집에서도 예민해지는 건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아몬드]중에서
고객의 화가 '듣기'만으로 조금은 누그러지듯이, 우리 부부에겐 '잘 듣는' 훈련이 필요할 듯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아픔을 느끼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잘 듣고 이야기할 수 있는 '찐 대화'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