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에는

by 수박씨

출퇴근 길에 책을 읽거나 브런치에 글을 썼다.

성수기에는 다르다.

나를 소비하고 싶다. 충전하고 싶지 않다.

무념무상으로 예능이나 드라마를 본다. 혹은 눈을 감고 쉬거나 존다.


'놀면 뭐하니'를 보며 누구나 가졌을 그 시절을 떠올리며 히죽거리고 보다가, 우울해질까봐 대단한 흥행에도 불구하고 미뤄놓았던 '부부의 세계'에도 발을 들였다. 도대체 소재가 이런 자극적인 것밖에 없나 싶어도 부부가 되어 보면 알 수 있는 미세한 감정선들에 공감하며 나는 금세 빠져들었다.


성수기는 코로나 2단계의 영향도 있고,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로 연신 전화벨이 울린다. 대기자수에 빨간 글자로 바뀌면 맘이 바빠지는데, 고객들은 책을 왜 빨리 안보내냐고 아우성이다.


죽일놈의 분리발송. 망할놈의 최근 배송지. 속터지는 해외주문. 복병 세가지인데, 보통때보다 학기철에는 항의의 강도가 세다. 분리발송은 결제페이지에 분명히 날짜가 기재된다. 9월00일 이후, 준비되는 도서 먼저 받을지, 모두 다같이 받을지 선택권을 주는데, 대부분 전화해서 항의하는 고객들은 날짜를 놓친다. 재고없는 도서와 함께 주문하면, 합배송이 원칙이므로 발송일이 늦게 세팅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객은 급한 본인의 사정만 얘기하고 항의한다. 설명을 하려고해도 듣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대학생인듯한 고객은 이 분리발송을 모르고 주문하여 문의글을 남겼고, 지연이 아닌 정상주문건이라는 안내를 받고 열폭하여 전화를 주었다. 같은 안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매장에 재고있는 도서도 아니어서 도와줄 방법은 금일출고와 반품밖에는 없다고 양해를 구했으나 노발대발이었다. 책이 급하다는데 반품 얘기가 말이 되냐고. 다른데 빨리 구할 수 있는 데 있으면 구하시고, 이 책은 당사부담 반품처리해 드리겠다고 하니, 그게 대안이냐며 다른 데 어디에서 파는지 알아나 보고 본인한테 얘기하는 거냐고 한바탕 난리 치고는, 녹취여부를 물으며 내 이름을 묻고 끊었다.


내가 왜 이렇게 욕받이가 되어야 하나. 왜 지생각만 하나.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있는 상담원 기분은 나쁘게해서 도대체 무엇하나. 친절한 상담에는 고맙다는 인사도 받을까 말까인데, 불만족한 상담에는 이름을 묻고 게시글에 올려 분를 풀어야 직성인 사람들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금일출고 요청도 안하고 그대로 두고 싶었다.


성수기는 고되다 참.

물류도 날짜에 맞춰 내보내려고 며칠을 밤새고 작업한다는데. 상담원은 총알받이고, 물류는 쏟아지는 물량으로 아등바등이고.

그런데 이 코로나 2단계에 사무직만 원격근무가 가능하다니, 가장 위험직군은 출퇴근을 강행해야 한다니 씁슬했다. 위험수당이라도 더 주는것도 아닌데.


에이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는데, 그냥 참 세상이 공평한게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게 맞는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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