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금쪽같은 내 새끼>다. 육아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주변에서 하도 성화라 몇 편 보다가, 이내 빠져 버렸다. <금쪽같은 내 새끼>의 MC인 오은영 박사가 강조하는 훈육법 중 하나가,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엄마들의 감정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면서 훈육해야 할 내용을 넘어서, 상관없는 이야기로 흘러갈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내가 당면한 문제
경쟁에 자신이 없는 편이라도, 경쟁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또 지기 싫어지는게 본성인지, 내가 경쟁적인건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나는 보다 많은 콜을 친절하게, 빠지는 안내문구 없이 해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 하면 상담이력을 더 빨리 남기고, 안내멘트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생겨, 고객이 내 뜻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내 말을 먼저 들어보세요!'하는 제스쳐를 취하게 된다. 물론 통화이다보니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거나, 어투로 압박하는 것 뿐이지만, 느긋하게 하자 마음 먹어도 통화가 길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통계창을 열어 전화를 얼마나 받았는지, 다른 상담원은 어느정도 받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많이 떨어져 있다 싶으면 따라 잡고자 화장실도 안가고 전화를 받았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도 받았다. 아주 경쟁적으로.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점점 피로도가 올라왔다. 왜이렇게 눈이 뻑뻑하고, 어깨가 결린가 했더니 아이들이 잠을 못자는 이번주 상황도 한몫 한 것 같다. 어제는 막내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엄마 잠을 깨우더니, 오늘은 둘째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3권의 책을 몽롱한 정신으로 읽어주고 겨우 재웠는데, 이내 깨어나 다시 또 3권을 읽어 달란다. 요즘 <금쪽같은 내새끼>의 오은영 박사의 지침을 듣고 있는 터라, 인내심을 발휘하여 팔다리를 맛사지 해주며 다시 재웠다. 다시 잠을 청하는 사이 막내가 난입했다.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사실은 관계
내가 아주 괜찮게 생각했던 동료가 있었다. 나이도 같고, 아이들 나이도 비슷하여 처음 복귀했을 때부터 많은 얘기를 나눴더랬다. 나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고, 오가는 메신져의 대화들로 상대도 그럴거라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실제 점심을 제안하거나 하면 응하지 않았고, 먼저 청하지도 않았다. 아, 이 사람은 나랑 이 정도의 관계만 원하나보다 생각하고 이제 개인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련다, 했는데 자꾸 메신져로 말을 걸어온다. 친한 사람들과나 하는 일상공유를 자꾸만 한다. 이 사람 때문에 요즘 신경이 쓰인다. 동료인데 잘 못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나이에 구구절절 쿨하지 못한 얘기들을 나열하기도 그렇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대쉬했다가 차인 여자처럼 머쓱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었다. 성격상 티를 안내고는 못배겨서 그대 때문에 마상(마음의 상처)이오! 라고 결국 말해버렸지만, 상대는 뭐 어리둥절이었다. 이렇게 주말을 맞이하다니! 내 나이 곧 마흔인데, 아직도 관계에 서투르기만 하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고객이 어쨌든, 컨디션이 어쨌든, 관계가 어쨌든 나는 고객센터 상담원이다. 상담의 일을 하기 위해 회사에 나온다. 고객의 불편을 경청하고, 덜어드리는 게 나의 본분이다. 한 분 한 분의 고객을 만나면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하자. 관계야, 시간이 흐르면 자리를 잡아가겠지!
내가 친절해야겠지. 내 역할은 오직 친절한 것뿐이니까. 더 나아져야 하고 기도해야하겠지만 기도를 통해 많이 나아진 것 같구나. <길리아드 169p>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누군가를 대할 때는 너에게 질문이 던져진 것과 같지. 그러니 '이 순간, 이 상황에서 주님은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나?'라고 생각해야 한단다. 모욕이나 적개심과 맞닥뜨린다면, 처음에는 똑같이 대응하자는 충동이 일겠지. 하지만 '이 사람은 주님이 보내신 사자이며 나를 이롭게 하려는 의도가 있어. 무엇보다도 내 믿음을 보일 기회이고, 나를 구하신 은총에 작게나마 참여할 기회야'라고 생각해야 한단다. 그러면 상황과는 다르게 자유롭게 처신하게 되지. 동시에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분개하는 충동에서 자유롭게 된단다. 주님이 너를(그리고 그를) 이롭게 하시려고 네게 그를 보내셨다는 생각을 그가 비웃겠지. 하지만 주님이 그를 워낙 완벽하게 위장하셨기에 그 자신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거란다. <길리아드 1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