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야

by 수박씨

고객님이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찾았다. 사실 십이야를 알지 못했고, 나는 검색창에 '시비야'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가 나올 리 없었다. 이것도 모르냐는 고객의 귀찮은 말투에 재차 묻기도 어려워 '셰익스피어, 시공사' '전예원, 셰익스피어' 로도 검색했으나 비슷한 제목도 없었다.


이번에는 <바냐 외삼촌>을 찾았다.

나는 '바냐의 삼촌'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에는 없었지만, 연관 상품으로 <체호프 단편선>이 보였다.

다행히 재고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안내를 마치고 아무래도 첫 번째 문의한 '시비야'가 맘에 걸렸다. 천천히 검색해보니 전예원 출판사의 <십이야>가 있었다. 아뿔싸, 어떡하지? 다지 안내해야 할까? 아! 매장 재고 확인이었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객이 방문하려던 매장에는 재고가 없었다. 다시 안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안도의 숨을 쉬었다.


고객센터 근무 초, 학기 성수기일 때 <캠벨의 생명공학>을 못 알아들어서 고객에게 된통 혼났던 일이 떠올랐다. '캠벨'을 못 알아듣자, '아휴, 상담원이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에 상처 받고, 주변 지인들에게 '캠벨'을 아냐고 물어댔더랬다. 나만 몰랐던 상식인지 물어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다들 인문계열이라 그렇겠지만, 다행히 내 지인들은 아는 이가 없었다.


불친절


고객한테 불친절하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무지를 꼬집는 고객에게 지기 싫은 마음이 하나고, 둘째는 나 자체의 컨디션이 한몫한다. 잠을 푹 자지 못했거나, 신경 쓰는 일이 있거나 하면 여지없이 별로 까다롭지 않은 고객들에게도 날이 선다. 내가 얼마나 단단하지 못한가, 반증하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 고민해봐야 소용없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마지막으로는 실적의 압박이다. 근무 시간 내에 많은 콜을 받을수록 인센티브의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받아본 사람일수록 통화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노련한 상담원은 절대 티 내지 않으며, 끝까지 친절한 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나 같은 초짜는 티가 나나보다.


어떤 고객이 상품 출고 시 검수 요청을 했다. 제휴사 주문의 경우 30분 정도 연동 시간이 있기 때문에 주문하자마자 문의할 경우 확인이 안 된다. 당연히 나는 연동이 안되어 주문건 확인이 불가하다고 안내했으나, 고객은 내 이름을 물으며 조용하지만 찝찝하게 전화를 끊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몇 시간 후 메신저로 매니저님이 자리로 좀 오라고 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웬만해선 자리로 오라고 하지 않는데 무슨 일일까.


전혀 예상 못한 그 고객 건이었다. 불 친절한 건 아니지만, 이번 고객 같은 경우 자주 전화하고 까다로운 고객이라고 예측할 수 있지 않겠느냐, 기본정보 적어두고 나중에 확인되면 전달드리겠다,라고 안내하면 좋았을 것이고, 전체적인 내 상담 스타일이 '먼저 실드를 친다'는 거였다. 좀 더 적극적인 친절을 베풀라, 가 요지였다. 과도한 친절도 베풀어 봤지만 오히려 콜만 길어진다든지, 다른 문제점이 생기기 일쑤여서, 최대한 간단히 처리하자, 가 어느덧 나의 모토가 되어 있었다. 그런 업무 처리 방식에 브레이크가 걸려온 것.


실적과 친절까지 신경 쓰려니 외려 더 예민해지는 기분이 부쩍 들었다. 단순 문의도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고, 이상하게 피곤이 쌓였다.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뭐가 문제일까. 내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최선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피곤한가? 컨디션이 안 좋은가?


나의 상태를 잘 알지 못했다.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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