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객불만해결이 나의 일이지만.
<숨통트기> <혼자놀기> 등의 책을 낸 저자 강미영은 글쓰기 연습의 팔할이 군대간 남자친구에게 쓴 편지 700통이라 했다. 나 역시 글쓰기 연습의 9.5할은 편지와 일기였다. 내 학창시절의 우정과 사랑은 편지가 대신해 주었다. 중학교 때부터 편지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 친구들끼리의 편지는 밥 먹는 일처럼 늘 있는 일이었다. 친구에게 섭섭했던 일, 고마웠던 일, 너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 등 울고 웃는 모든 이야기들이 편지에 담겨져 있었다. 좋은 명언들을 주워 담아 주기도 했고, 맘에 드는 노래 가사나 시 구절을 편지의 한 면에 적어 주었던 기억도 있다. 특히 중학교 3학년 남녀 합반일 때에는 성별이 남자인 친구와도 우정을 나누는 편지들이 오갔는데, 대개는 이성 친구에 대한 상담에 관한 편지였다.
편지의 시대는 갔지만 대학교에 들어서면서는 다음(daum) 이메일이 왕성한 인기를 누렸다. 온라인이 활성화 되면서 친구들은 별일 아닌 일들도 이메일을 쏴대기 시작했다. 그 중 '벅스메일'은 음악과 함께 배달되는 편지 서비스로, 내가 직접 선곡한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면서 상대에게 보낼 메시지가 한 줄씩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벅스메일'은 보관일수가 짧았다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친구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메일이었다.
나의 또 다른 글쓰기 연습은 다름 아닌 '일기'였다. 일기 역시 중학교 때부터 활발히 쓰기 시작했는데, 사춘기의 비밀을 고스란히 담아두는 나만의 힐링 노트였다. 친구와 싸우고 나서, 엄마나 아빠에게 혼나거나 불만이 쌓였을 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때 일기를 이용했다. 어느 날엔가 가장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가 일기장을 훔쳐 보고는 엄청 놀리는 바람에,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 보다는 글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메일은 이제 확인도 잘 하지 않아 1000통이 넘는 확인 하지 않은 광고 메일이 있을 뿐이고, 일기와 편지를 모아두었던 커다란 보따리는 이사를 여러번 거치면서 사라져 버렸지만,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나는 늘 글을 썼다. 메모장이든, 커피숍 영수증이든, 책의 귀퉁이든.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잘썼다던가, 대단한 문학소녀였다던가 하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사생대회가 있을 때면 준비물이 없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선택했을 뿐이었고, 엄마가 공부하라고 방에 밀어 넣으면, 10분도 채 되지않아 뒷문으로 빠져 나가 놀이터에서 밤늦도록 놀다 오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표현하는 데에 서툴렀다. 조리있고 자신있게 말하기가 힘들어, 생각을 거쳐 말할 수 있는 글이 편했다. 내가 하고픈 말을 두서 없이 늘어놓을 때면 친구들은 "나중에 글로 써서 줘. 글로써야 제대로 말하더라." 라고 할 때가 허다했다. 글은 내가 유일하게 제대로 할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표현도구였던 셈이다.
글쓰기는 일기와 편지가 전부였던 내가 대형서점의 '책소개'를 담당하는 부서에 덜컥 입사를 하게 되면서, 나의 글쓰기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식적인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업무를 하고있지만, 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듯 동료들과 글쓰기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신나게 일했더랬다. 누군가에게 딱 맞는 책을 추천해주면 가슴이 쿵쾅거리게 기쁘고, 좋은 책을 점 찍어 놓고 판매까지 좋으면 괜시리 어깨가 으쓱한 기분을, 일하면서 처음 맛보았다.
그렇게 재밌었던 일도 연차가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 성격도 바뀌고, 나의 열정도 시들어갔다. 그 즈음에 결혼을 하고 휴직을 했다. 복직 후 고객센터에서 일하게 된 나는, 이제는 취미로 글을 쓴다. 일기처럼, 자기고백처럼, 예전에 감성 터지던 그 시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