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언니들에게.
다시 아무튼, 다시 원도.
꽤 인상 깊게 봤던 <경찰관 속으로> 원도 작가의 신간이자, 아무튼 시리즈의 신간. '언니'라는 주제에 대해 적어낸 작가의 글이, 가벼운 처음과 다르게 후반으로 갈수록 숨이 막힌다. 여자로서 감수해야만 하는 것들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았고 많은가. 불합리함을 걷어내고 올바르게 나아가고 싶지만, 아직 이 나라는 거기에 닿으려면 많이 멀었다.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앞선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나는, 과연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살면서 한 번도 '언니'라는 단어를 타인에게 써 본 적이 없다(들어본 적은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꽤 신기하게 다가왔다. <아무튼, 언니>라고 해서 친언니 이야기를 할 건가 보다 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카테고리가 더 넓었다. 삶을 살며 만난 '언니'들의 이야기로 서문을 열어, 친언니의 이야기. 엄마의 언니 이야기.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언니들의 이야기로 흘러갈 줄은.
그런 언니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마땅히 축하받아야 할 어느 친구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기쁜 상황에, 사회는 축하해 주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라는 냉대만 있을 뿐. 친구의 선택은 많지 않았다. 지지는 적었다. 가족들도 남편도, '육아'라는 피곤한 삶을 강요했다. 결국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만 키운다. 물론 행복하다. 하지만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누나는 이전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뭐든 다 했다고 했다. 사장 집에 장을 봐주기도 했고, 개인적인 심부름도 했으며, 심지어 사장 속옷도 빨았다. 수치스럽고 자존감도 떨어졌지만, 누나의 삶의 무게는 이 정도로 흔들릴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그렇게 딱 2년을 일해 퇴직금을 쥐고, 이후 영화관에 입사했다. 그런 누나를 나는 존경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다 헤어리진 못했다.
영화관 운영자로 일했던 날들이었다. 우리 부서 서열 3위는 여자분이었는데, 그분에게는 항상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그건 바로 시집 안 가고 뭐 하냐는 질문. 친하다는 이유로 잘 안다는 것처럼 던져지는 참견들은, 결코 그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할 말이 없어서, 의식처럼 치러지는 멘트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항상 그 옆에선 나이가 더 많은 장가 못 간 서열 2위 남자분이 웃고 있었다.
* 완전히 돌아버려야만 똑바로 설 수 있는 팽이와 같은 세상에서 성실과 진심의 가치 따위, 씨알도 안 먹힐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질 바엔 그냥 사라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 쓰러지지 말자. 우리가 맞잡은 손이 끝없이 이어져 언젠가는 기쁨의 원을 그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운이 되어주자. 세상이 심어준 혐오와 수치 대신 서로의 용기를 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갈 우리는 설렁탕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튼, 언니> 내용 중.
많은 생각이 든다. 나는 차별화된 세상에서 얼마나 바르게 살고 있는지, 잘해왔는지. 계속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