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2020)
⠀
⠀
현수는 형사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그녀지만, 현재 그녀 개인의 심정은 막다른 절벽 위에 있다. 그리고 실제 절벽 끝에 서있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일상을 다시 찾고자 하지만, 사회의 염려 속에 자유를 속박 당해 그저 존재하고만 있다.
⠀
태풍이 강하게 치던 어느 날, 한 명의 사람이 죽고 둘은 만나게 된다.
⠀
⠀
영화 <내가 죽던 날>은 드라마 장르임에도 공포물과 같은 연출이 있다. 죽은 세진의 방에 전등이 깜박거리는 와중에 조금씩 줌인 되는 사진이라든지, 작은 창고 공간 내부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아 있는 장면이라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왼팔을 로커 문으로 치는 장면이라든지. 공포 영화 공식을 끝까지 가져가진 않지만, 이러한 연출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적절히 사용된다.
⠀
또 세진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을 로우 앵글(low angle)로 잡는 장면은 마치 그들이 죽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고, 아이스박스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참혹한 살인이 이미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다행히 이 영화는 공포물이 아니었다.
⠀
"아무도 안 구해줘, 너를 구해야지"
⠀
영화는 명백하게 남성과 여성을 가른다. 유서에 적힌 필체와 세진의 것이 동일하다는 것에 안심하는 형사나, 지속적으로 세진을 괴롭히는 오빠. 세진을 이해하며 위로해보려 했지만, 결국 포기해버린 형준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 반면 사회적 제도 밖에 놓여있는 순천댁과, 파트너와 불륜이라는 모함을 받고 있는 현수는 세진의 아픔을 공유하는 존재다. 고립된 곳에서의 답답함, 절망 속에 사는 참담함을 잘 아는 그녀들은 점차 세진과 같은 감정의 물결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녀들은 세진을 보며 용기를 낸다. 본인들과 다른 길을 걷길 바라며 말이다.
⠀
결과적으로 순천댁과 현수로 인해 세진은 현실의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새로운 출발선이 되었다. 해피 엔딩이지만,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과연 괜찮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 초반, 세진에게 매섭게 몰아치던 파도가 잔잔해진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면, 감독은 현수와 세진을 동일 시 하는 이미지를 관객에게 수차례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는 모습과 부쩍 수척해진 눈가, 정서적 공감이라곤 없는 타인의 시선에 - CCTV와 현수의 직장 동료- 상처받는 모습, 그리고 앉아 있는 자세가 겹쳐지는 모습은 앞으로의 전개를 쉽게 밝히는 것 같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