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딸이 아프기 시작했다.
잘 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갑자기 고열이 났다.
딸도 아프고 힘든 지 엄마만 외치며 안겨 있으려 했다.
나와 B는 당황했다.
한 번도 이런 적 없던 아이기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일단 해열제로 버텨보기로 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소아과 응급실을 알아두었다.
다음 날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에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가까운 A 병원은 새벽 4~5시쯤 현장 접수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첫 번째로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 찾은 병원은 인산인해였다.
이렇게 아픈 아이가 많은 것인가... 숨이 턱 막혔다.
딸은 특별한 병명을 진단받지 못하고 약만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오후,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는 딸을 다시 차에 태워 저녁 진료를 받으러 갔다.
빠른 접수가 어려운 와중 고열이라고 그래도 병원에서 상황을 봐주었다.
저녁의 병원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울고 어른들은 애가 탔다.
딸은 링거를 맞고 훨씬 나아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3시간 만의 귀가였다.
딸을 재우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렇게 사흘을 열침번(열 체크+불침번)을 서고 다행히 지금은 안정기에 들어섰다.
병원에 아픈 아이들이 참 많았다.
딸보다 더 어린 갓난 아기도 있었고 훨씬 큰 초등학생 어린이도 있었다.
그 옆엔 당연하게도 부모가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이가 1살이던 10살이던 그 이상이던, 부모에겐 항상 자식은 애겠구나 싶었다.
지난 명절에 심하게 체해 고생을 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전화로 징징거렸다.
엄마 나이 여든다섯. 웃긴 게 엄마도 명절에 장염이 걸려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그러면서도 내 걱정에 두 시간마다 전화하는 걸 보고 나는 짜증만 냈다.
나란 새끼, 아직도 멀었다. 부모가 되어도 내 부모한테 짜증이나 내니.
부모의 마음을 다 알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