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복싱이냐고 묻는다면.
음, 그러니까 유치한 발상이긴 한데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확실히 지켜야 하니까 호신용으로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게 복싱이고.
주변의 누구는 "복싱으로 애들을 보호해? 돈으로 해야지" 라고 했지만, 나의 머릿속엔 '복싱=애들 보호'라는 공식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배우자에게 했을 때 예상보다 긍정적인 반응이었기에 나는 더 수월하게 복싱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요즘엔 줄넘기부터 안 합니다. 자, 거울 보시고 포즈부터 취할게요."
거친 호흡과 땀이 즐비하게 흩뿌려지는 줄넘기를 예상했던 나는, 거울 앞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자, 앞 손 살짝 툭 치고 빠진다는 느낌으로~ 원!
뒤 손은 쭉 뻗어 내지르며~ 투! 이때 허리랑 뒤 발이 같이 돌아가 줘야 합니다. 자, 원~ 투~ 원~ 투~ 연습하고 계실게요~”
글러브도 없이 맨손으로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내지르자니 여간 민망스럽다. 저 멀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스파링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내 모습이 더 가여워 보인다. 피식 새어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꾹 참고 거울 속의 나를 본다.
‘그래, 너도 웃기지, 나중엔 좀 더 멋진 모습 보여줄게. 근데 스파링 할건가 나...?‘
나는 싸움을 싫어한다.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갈등의 해결을 굳이 치고받는 걸로 해야 하냐는 게 내 생각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누군가와 치고받는 싸움은 중학교 1학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파편화된 기억 속에 몇몇 장면만 기억나는데,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럼에도 상대방은 시비를 걸었고 나는 날아 차기를 그에게 꽂았다. 승패의 결과는 모르겠다. 친구들이 말렸던 것 같기도 한데.
여하튼 그런 내가 투기를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다니, 내가 생각해도 인생에 이례적인 일임이 틀림없다. 아이들을 위해 싫어하는 것도 과감히 도전하는 게 조금 기특하기도 하고. 이러다 대회까지 나가서 링에 올라선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멋진 일일 거 같다. 아, 아니다. 허공에 주먹을 던지고 있자니 별 생각이 다 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무렵, 관장이 와 내게 글러브를 건넸다.
인생 첫 착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