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디저트 관련된 일을 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영화나 책, 잡지에서 만나는 예쁜 디저트들과 길 가다 만나는 새로운 빵집과 디저트 샵에서 얻는 행복한 에너지는 상당했다. 나 역시도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며 맛보고 분석해보고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는 행위들 자체가 힐링이었고, 괜스레 내가 구울 줄 아는, 내가 아는 디저트가 나오면 반갑기 그지없었다.
힐링, 행복, 크나큰 것도 아니었고 쇼케이스 가득한 아름다운 디저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그런 예쁜 디저트들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베이킹 강사 활동만 하고 있지만, 불과 1년 10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몇 년간 베이킹 작업실을 운영하며 케이크를 주로 판매했었는데, 모두 주문 예약제로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어드리는 일이었다.
혼자 주문하시는 고객님들의 사연을 듣고, 일정을 짜고, 그에 맞는 글씨와 그림을 케이크 위에 그려 넣는 작업은 상당히 정교함을 요하고 고되었지만, 그 속에서 얻는 뿌듯함과 기쁨, 그리고 고객님께 전달드린 후 보내주시는 후기글이 주는 안도감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고심해서 만든 케이크 하나가 어느 가족에게는 그날, 그 장소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내는 것! 내 손 끝에서 나온 창조물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기쁘고 보람된 일이었다.
나는 다양한 베이킹을 하지만, 모든 베이킹 분야를 통틀어서 가장 자신 있고 재미있고 뿌듯한 작업이 뭐냐 묻는다면 단연코 케이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객님의 요청과 나의 아이디어를 쏟아부어 만들어 내는 특별한 날의 특별한 케이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커스텀 케이크를 내가 만들어 냈다는 뿌듯함! 당시에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회상하면 힘들었다기보다는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하나의 케이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폭신폭신한 케이크 시트인 제누아즈를 구워낸다. 신선한 계란과 설탕을 넣고 휘핑 기계를 돌리면서 풍성하게 반죽을 완성하면, 재빠른 손놀림으로 밀가루를 체 쳐서 넣고, 마지막에는 액체 재료를 넣고 재빠르게 섞은 후 팬에 부어 오븐 속으로 들어간다. 이내 달콤한 향이 가득해지면서 봉긋하게 제누아즈 반죽이 부풀어 오른다. 제누아즈 시트는 주문 케이크 크림 작업 전날에 구워 하루정도 실온 숙성을 거쳐야 촉촉하고 설탕이 고루 퍼져서 더 맛있어진다. 케이크 크림은 총 세 가지를 사용했는데, 주로 생크림과 우유 버터크림 그리고 크림치즈 생크림으로 작업했었다. 각 크림들은 표현하는 데 있어 특징들이 있었다. 보다 디테일하고 컬러감이 강한 케이크라면 우유 버터크림으로 만드는 게 가장 완성도가 높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는 산뜻한 생크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던 케이크들은 예민하고 까다로운 크림이긴 해도 웬만하면 생크림으로 만들어 내곤 했었다.
내가 한창 맞춤형 커스텀 케이크를 만들던 10여 년 전에는 동네에 이런 케이크를 만들어 주는 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주 멀리에서도 일부러 케이크를 주문하고 찾으러 오시는 분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케이크 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손이 많이 가고 어느 정도 실력도 요하는 작업이니까. 나는 그때부터도 케이크 위에 오롯이 나의 그림실력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당시에는 이걸 뭘 대고 그리는 게 아니냐고 어떻게 그려내냐고, 놀라워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정말 그냥 그렸다. 새하얀 케이크 윗면이 도화지였고, 색색의 크림들은 물감이었다. 또한 하다 보니 늘었기도 했다. 원래 학창 시절 미술을 전공해볼까 고심할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었어서 더욱더 케이크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즐거웠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참 손재주 좋은 분들이 많이 생겼다 싶다. 그리고 이제 케이크 위에 그림 실력이 없더라도 그려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디자인 케이크도 참 많은 변화를 거쳐왔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내가 언제 다시 공방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가게를 열게 된다면 커스텀 케이크 전문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고객님들의 소소한 사연들이 있는 다양한 케이크들을 만들어 보내면서 마치 내 새끼 시집 장가보내듯 헛헛하기도 했고, 가서 사랑받아라, 소곤소곤 이야기해주며 사진을 찍어 남겨 블로그에 기록하던 나날들이 있었고, 문득 그리워진다.
케이크란 존재는 그냥 보면 달콤한 디저트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전달해주는 그런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케이크를 정성껏 만들어 내는 파티시에 역시 행복함을 느끼면서 만들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