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도서관에 들러 각자 볼 책을 빌렸다. 그동안 보려고 생각했던 책들을 검색하고 책을 찾다가 문득, 제목에 꽂혀서 뽑아 든 손미나작가님의 책.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내가 불행해서 눈길이 갔을까? 음, 아마 아니다. 나는 지금, 불행하지 않다.
물론 최근에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황당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적잖은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늘 그렇듯 이 또한 지나갈 테고, 끝은 있을 테고, 그 끝이 어떻든 매사 진심으로 마음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느 누가 뭐라 해도 견뎌내고 버티다 보면 또 시간이 흘러서 나중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지금의 삶에 잠시 나 자신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고 토닥여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외롭지 않다. 하지만 나는 또 물밑에서 열심히 발을 저으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려고 하겠지. 여전히 나를 내려놓지 못한 채.
손미나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몇 년 전부터 팔로우하며, 그녀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멋진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 다양한 활동을 하던 그녀의 인스타그램이 잠시 잠잠한 적이 있었고 멀리 여행을 떠난 것을 보며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었더랬다. 그때, 그녀는, 그녀가 겪은 삶에서 잠시 멈춤을 위한 여행을 떠났었고, 이 책이 그 여행 끝에 쓰여진 것 같았다.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녀가 떠난 이런 종류의 여행이 우리에게도 필요하구나. 적어도 직접 비행기를 타고 하하 호호 즐겁게 먹방을 하고 관광지를 누비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마음가짐의 중요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했다.
p19 인생에서 어쩌다 한 번 본능에 따라 일탈을 감행하는 게 지탄받을 일은 아니라고,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이 정도 선물은 해도 된다고. 남이 뭐라든 저질러보고 싶은 일이 누구에게나 있고, 그걸 생각에만 가두느냐, 실행에 옮기느냐는 각자의 자유라고. 한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후자를 택하며 살고 싶다고.
p51 마음이 원하는 일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당신은 뭘 했나요?
마음이 원하는 일,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여행? 무척이나 떠나고 싶다. 늘. 한 번 사는 인생이라서 더욱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 나중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변두리 작은 집에 살아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하며 살고 싶다. 나는 그만큼 여행에 갈증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현재를 사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작은 여행들을 어떻게 서든 계획하고 만들어내면서 버티고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즐거움은 무엇이고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p86 '해야 하는 일' 말고 '하면 기쁜 일'
p91 특별한 소득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초조해하는 시간도 줄었다. 여전히 욕구를 자제하고 감정을 조절하려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정신이 나서지 않고 잠잠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p101 잘못된 선택을 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겠는가. 그러니 과거의 내 결정이나 행보에 대해 자책해 봤자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될 뿐 전혀 도움 되는 건 없다. 이럴 때는 그냥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인생의 섭리다.
p102 후회할 시간에 최대한 빨리 뿌리를 뽑아버리는 편이 나았다.
.... 고통을 잘 참아내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잠시 기다리면 다시 원점에 가까운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결코 어떤 실패도 거기서 끝이 아니며,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
'해야 하는 일' 말고 '하면 기쁜 일' 소제목에서 먹먹해졌다. 요즘의 나에게 해주고싶은 말이었는데 남들에게 들킬라 애써 숨기고 싶어 기피하고 있었던 말이기도 했다.
하면 기쁜 일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나는 잘 살고 있고 즐겁다고 생각해 왔다. 나름의 자부심도 가졌고 힘들지만 어떤일이 안 힘들겠나 싶은 생각에 더 노력하고 에너지를 쓰고 마음을 썼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번아웃을 느끼고 나니 현재가 즐겁지 않았다.
늘 호기심이 많아 다른 삶에 도전할 수 있는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시도를 해보곤 한다. 그런데 자꾸만 내가 선택한 상황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나는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이 어그러진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안타까운 나의 가족은쉬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알량한 자존심이 남았는지 버티고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면 기쁜 일'이 나에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고, 반신반의했던 '나'에대한 질문에 대해 불분명하지만 답을 구할 수 있을 것같았다.
그렇다. 내 결정이나 행보에 자책해 봤자 모든 것이 로스였다. 그런 시간이 아깝고 그런 상황들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게 보였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질질 거리고 끌어봤자 소용이 없다. 내 인생이고 내가 선택하는 삶이었다. 알고 있으면서 자꾸 회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주위에 나를 이해해 주고 다독여주는 가족과 친구,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왜 혼자 고통을 감내하면서 견뎌내려고만 했을까.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추구했지만 자꾸 외로워지고 슬퍼진다. 적어도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상처가 된 상황들을 견뎌내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훌훌 털어버릴 테다. 그게 나에게 좋다. 나도 안다..
p132 인생을 결정하는 건 자기 인생을 대하는 태도다.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무엇인지, 자기 삶의 어느 부분에서 욕심과 집착을 덜어내야 할지 아는 것.
p166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세상 모든 것엔 끝이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되면서 이별 후의 상처가 두려워 마음을 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가슴 한구석에 허전함과 상실감, 쓰라린 기억의 창고가 들어서지 않도록 아예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쪽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더라도 완전한 믿음이 쌓이기 전까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관계가 멀어졌을 때 상처받지 않도록 방어태세를 갖추는 사람이 된다.
p250인생은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인간은 아픈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행복은 지금 현재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 우주의 모든 것은 내가 존재할 때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없으면, 내 삶이 끝나면, 지나간 시간 속의 일이 되어버리면 세상은 의미를 상실하기에 현재 살아 있는 순간을 느끼고 즐겨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이번 모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p251 다시는 과거에 매인 채 미래를 향해 달아나듯 살던 지난날의 나로 돌아가지 않기를, 행여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면 또다시 이곳에 와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기를. 그때 바다는 대답해 줄 것이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앞에 놓인 시간만큼 소중한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나의 어리석음을 알았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이고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최근까지 자꾸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문장이 있는데, '모든 것은 끝이 있구나.'였다.
그동안 지나온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팟 하고 터지듯이 촥촥 스쳐 지나가는 나의 기억 속 장면들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삶을 대하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이 상황들은 모두 언젠가는 끝이 있으므로, 그 끝을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독자의 입장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읽어 내려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내가 20대 때부터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쿠바. 쿠바에서 살사유학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그녀의 행보가 부럽다.
난 40대인 지금 여전히 쿠바에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표현이 넘치는 쿠바의 매력을 느꼈던 그때, 그때 떠났어야 했다. 20대에 느꼈던 쿠바 음악과 춤의 정열, 사람들의 자유로움, 조금 불편해 보이는 여행지라 할지라도 그때 갔었으면 나는 또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지나온 과거는 후회하지 않지만, 세월이 흘러있음은 늘 아쉽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20대 미혼인 나의 쿠바여행, 지금은 불가능한 이 조건들은 이제 내려놓은 채, 나는 남은 나의 삶에서 어떤 여행을 꿈꾸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