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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Dec 15. 2023

대학 새내기 시절 첫 해외여행을 회상하며

스무 살의 첫 일본여행


최근, 대학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문득 이 친구와 떠났던 나의 첫 해외여행이 떠올라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잊혀 가는 기억의 끈을 어찌 부여잡을지는 단 한 가지, ‘기록’ 뿐이다. 그런데 내가 꾸준히 20대의 삶을 기록해 두었던 싸이월드가 먹통이 된 이후 수개월째인데 여전히 복구될 가능성이 없나 보다. 내 20대를 구구절절하게 기록했던 추억의 사진첩이 날아간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지만 인화해서 사진을 정리해 둔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두꺼운 앨범을 꺼내기에 내가 사는 현세가 너무나 바쁘다. 이렇게 아쉬운 대로 싸이월드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대학1학년을 보내면서 뭉쳐 다니는 멤버들이 생겼다. 여자 7명에 남자 2명. 여자가 좀 더 많은 외국어학부 일본어 전공이니 이 정도 성비라면 적절하게 그룹이 지어진 것이라 볼 수 있을 터. 이 중 마음에 맞는, 함께 여행을 가자고 선동했던 나를 따라준 세명의 친구들과 함께 인생의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것도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떠나겠다며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에 비하면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1999년, 2000년에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인지, 지금까지 이어지는 철저히 자유여행만 고집하는 여행스타일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첫 해외여행지는 일본이었다. 우리가 일본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일본어 전공생 1학년들이었기 때문에 일본이란 나라를 한 번쯤 가봐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우리의 일본어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대학에 와서 처음 일본어를 접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일본어 전공 학부생 1학년의 일본어 실력은 그렇게 수준이 높지 않았다. 간신히 일본어 회화를 몇 마디 할 수 있었고, 일본어 히라가나는 그렇다 쳐도 가타카나는 헥갈렸으며, 한자 읽기는 더더욱 넘어야 할 산이었다.


99학번 새내기였던 우리는 2000년, 밀레니엄시대가 시작되자마자 겨울방학을 이용해 일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도 여행을 가려면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인데 당시 첫 해외여행은 오죽했을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주로 찾는 노란색 표지의 나라별 ‘백배 즐기기’ 시리즈가 가장 믿을만한 여행 서적이었다. 이 책 말고도 ‘저스트고’ 나 ‘프렌즈’ 시리즈 책 등도 참고서적으로 빌려 본격적으로 여행일정 짜기에 돌입했다. 필요한 지도와 참고할 일정들을 수첩에 기록하고 복사를 했다. 혹은 일본 전문 여행사에 찾아가 관련 여행자료집을 요청해 우편으로 받거나 직접 찾아가기도 했었다.


첫 해외여행에 동행한 친구들은 전적으로 나에게 일정을 짜도 좋다고 했다. 나는 내가 주도하는 여행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첫 여행이기 때문에 잘 다녀오고 싶었다. 또한 대학생이다 보니 여행경비가 한정적이므로 적절한 선의 경비를 잡고 계획을 짰다. 다만, 친구들과 의논해서 꼭 가봐야 할 곳이나 해야 할 것 등을 집어넣는 것도 신경 써야 했다.


우리가 가려던 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인 도쿄, 오사카, 교토, 나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일본여행이면서 도쿄에서 굳이 400km는 떨어져 있는 오사카가 있는 간사이지역까지 넘어가는 비효율적인 일정을 왜 짠 건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하여간 그랬다.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냥, 구석구석 일본의 큰 도시들을 다 구경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 계획의 시작은 우선 비행기와 숙소였다. 비행기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지금이랑 비슷하게 항공권만 구입할 수 있었다. 숙소는 당시 해외여행을 하는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한인민박’을 많이 이용했을 텐데, 지금으로 말하면 딱, ‘에어비앤비’였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집을 사던지 대여하던지 해서 네이버나 다음에 민박집 운영 관련 카페나 사이트를 만들어 두고 미리 예약을 받았다. 나는 미리 적당한 위치와 컨디션의 숙소를 선입금을 걸고 예약을 했고, 숙소에 도착할 때쯤 주인분과 문자로 연락을 취하면, 우리 숙소에 열쇠를 들고 한국인 주인이 나타나셨다.


첫 일정이 오사카였는데, 우리의 첫 숙소였던 한인민박집은 오사카 난바역 근처, 도톤보리의 그 화려하고 북적이는 상점가를 달달달 캐리어를 끌고 가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었던 식당 옆 허름했던 민박 숙소로 기억한다. 2층침대 2개가 있던 방이었는데 우리 네 명이 한방에서 묵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첫 해외여행숙소에서 여대생 네 명이 한방에서 묵으면서 얼마나 흥분되고 설레었을까 싶다. 아침부터 밤까지 긴긴 수다에 뭘 해도 깔깔거리고 웃고 떠들던 시간들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밤새 수다를 떨어도 다음날 여행 일정이 아침부터 꽉 짜여 있기에 늑장을 부릴 수가 없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준비를 하는데, 친구들이 아침에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가 참 신기하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철저히 준비를 해 두고 그날 떠날 여행지의 동선과 준비물을 체크하고 그랬는데, 이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지에서는 특히 부지런해야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많이 경험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바쁘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그때에는 행여 실수할까 싶어 지하철 티켓 사는 것도, 버스표 사는 것도 엄청 고민하고 지도를 펼쳐 요리조리 돌려가며 길을 찾아다녔다. 나는 마음이 분주하고 다음 코스로 친구들을 제대로 인솔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거렸지만, 정작 그때 여행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가끔 이야기를 해보면,


“네가 다 일정 짜고 데리고 다녀줘서 우리는 편했지!”


“그런데 정작 우리가 어디 가서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등 각자가 기억하는 우리의 첫 해외여행은 조금씩 달랐다.

이 여행을 계획한 나는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생생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때 느꼈다. 여행은 역시 어디를 갈지, 어떻게 갈지, 무엇을 먹을지 직접 계획을 짜는 ‘자유여행’을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 다녀와서 더 여행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좋은 사람들과 떠난 해외여행을 보다 알차게 보내고 추억하기 위해서는 자유여행이다! 그래도 가물가물했던 기억 속,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당시에 한 장 두 장 남아있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의 첫 일본여행을 추억하게 되는 것 같다.


도쿄 신주쿠의 환락가 가부키초거리 초입의 빨간색 구조물 앞에서 이곳의 의미도 모른 채 대낮에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 밤에는 환락의 거리로 변하는 신주쿠의 ‘가부키초’. 이곳은 어스름한 초저녁에 지나가기만 해도 일본 언니 오빠들이 야릇한 전단지를 뿌리며 호객행위를 하던 도쿄 최고의 유흥가이면서 환락가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도쿄에서 이 거리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대형 쇼핑몰이 생기고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도쿄에서는 제일가는 향락가임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무려 22년 전 가부키쵸 구조물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찍은 스무 살 여대생들의 사진은 웃지 못할 추억의 단편이 된 것 같아 재미있다.


 교토에서는 ‘호류지’라는 절에 갔다. 절의 벽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화가 담징의 벽화를 보겠다며 넣은 교토 일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벽화는 기억이 나지 않고, 대충 절을 보고 나와 계단에 쪼르르 앉아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뜯어먹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어 그 순간을 추억하게 된다. 다음 코스로 이동 때문에 점심 먹을 시간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미리 편의점에서 오니기리(주먹밥)를 골고루 사 왔었다. 나는 그때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반찬인 절임 매실인 ‘우메보시’ 한자도 제대로 모르고 고른 우메보시 오니기리가 너무나 쓰고 맛이 이상해서 제대로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는 여전히 ‘우메보시’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그때 생각했다. 적어도 일본 여행 전에 편의점 먹거리나 식당 메뉴 먹거리 한자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겠다!라는 것도 말이다.


나라에 들러서 토다이지라는 절을 방문했다. 일본 역사에 큰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면서 새내기 시절 첫 해외여행지에 왜 절을 다 넣었는지 모르겠다. 나라의 토다이지는 꾀나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나는 이후에도 두세 번 정도 나라를 더 방문했었는데, 절 안의 한 기둥에 뚫린 구멍을 통과하면 1년의 액운을 막을 수 있다 하여 줄을 서서 기어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내 어린 아들이 이 구멍을 통과했었지만 말이다. 또한 나라에서 시내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사슴들과 만났던 추억들도 있다. 이후에도 나라에 갈 때마다 사슴들은 여전히 한갓지고 여유롭게 나라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한다.


사진 몇 장이 그나마 남아있어 새내기 시절 첫 해외여행을 추억해 볼 수 있었다. 그 후 이 멤버로 해외여행은 더 이상 불가능 했다. 그 후 한 친구와는 따로 태국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인생은 모든 것이 타이밍이었다. 대학생활을 신나게 누리고 휴학도 했다가 복학했다가 취업들을 하더니 또 순서대로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살기 바쁜 우리들이었다. 나 역시도 운 좋게 졸업 전에 취업이 되어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이렇게 삶은 순탄하게 돌아가는 듯해 보였지만 알게 모르게 그 속에서는 왠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다. 늘 떠나고 싶어 목마름을 느끼고 사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20대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줄 일이 생긴다면, 뭐든지 다 해보라고, 버릴 것은 없다고, 경험 부자로 살아가라고, 그리고 기회가 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무조건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첫 해외여행에 동참해 준 친구들과 만나면, 다시 한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봐야겠다. 모두 현생이 바빠서 과거를 묻어두고 사는데, 적어도 우리가 함께 했던 2000년 초, 그때 그 겨울에 함께 첫 일본여행을 갔었던 우리의 스무 살, 그때의 시간들은 그랬었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학 새내기 시절, 그리고 첫 해외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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