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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Nov 17. 2023

누군가의 여행을 보다 풍성하게!

ようこそ韓国へ! 어서 오세요! 한국에!



 여행계획을 짜고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내가 떠날 여행에 대한 계획을 짜는 것도 그렇지만, 누군가의 여행계획에 동참하여 의견을 내고 가이드를 짜주고 함께 하는 시간 역시도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설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며칠 후에도 일본에서 지인이 한국에 놀러 오기로 해서 뭐 할지 일정을 함께 짜고 동행할 계획을 세웠다. 일정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괜스레 들뜨기 시작한다. 해외에서 오는 누군가를 어레인지 하는 일은 즐겁다. 팬더믹 이후 오랜만의 외국 손님의 방문이라 더더욱 준비하는 시간이 설렌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까. 누군가의 여행을 보다 풍성하고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즐겁다.


 사회초년생 시절, 내가 했던 업무는 일본 담당 해외영업, 수출 파트였다. 따라서 회사와 거래를 하는 거래처들은 모두 일본의 큰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작은 무역상사까지 다양했다. 나는 팀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유일한 막내였기 때문에 해외에서 오는 바이어가 있다면 의전 활동을 도맡아 했다. 영업 특성상 바이어들과 비즈니스적인 미팅을 하고 나면 저녁에 식사 자리, 소위 말하는 접대의 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당시 회사가 있던 공덕역 근처에서 마포근방까지 괜찮은 한국적인 음식이 정갈하게 나오는 식당을 예약하는 일부터 시작해 바이어에게 전달할 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들르는 것도 내 업무 중 하나였다. 사실 좋게 말해 업무지 허드렛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입사원인 주제에 마다할 수 없었고, 사실 나는 사무실에 처박혀 업무를 하는 날 보다는 이렇게 외출을 하고 콧바람을 쐬는 외근 시간을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바이어의 선물을 사러 나간 인사동은 수많은 외국인들로 붐볐고, 팀장님이 정해주신 구체적인 선물 목록을 참고하여 괜찮은 물건을 고르는 것도 내 몫이었다. 회사에서 지정한 기념품샵에서 몇십만 원, 혹은 몇백만 원어치 바이어용 선물을 구입해 정성껏 포장한 박스들을 주렁주렁 달고나와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이 업무상 빌린 명품 옷들을 주렁주렁 이고 지고 거리 한복판에 서성이던 그 장면을 상기시키면 딱이다. 하지만 짐의 무게로 인한 처량함보다는 나도 그녀처럼 즐거웠다. 내가 맡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던 원동력은 나의 콧바람 쐬기 좋아하는 기질과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소개할까, 어떤 음식과 어떤 선물, 어떤 관광지를 좋아하는지 관찰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즐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일본 모 대기업의 내 또래 손녀딸이 한국에 놀러 와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거라면서 팀에서 그녀의 일일투어를 담당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회장님은 손녀딸이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한 것이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래서 그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겸, 기꺼이 내 담당 바이어이기도 했으니 내가 직접 하루 투어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녀와 오후에 만나 저녁에 한강유람선을 타고 함께 동대문 새벽시장을 쇼핑하는 코스였는데, 새벽시장이라니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가 또 언제 그렇게 다녀보겠나 싶어 즐겁게 내 업무에 임했다. 그녀와 유람선을 타고, 동대문새벽시장 구경을 하고 쇼핑을 도와주고 함께 떡볶이를 먹고 어두컴컴한 골목길 어귀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에 무사히 넣어주고 팀장님께 잘 마무리했다고 보고를 하고 나니 새벽녘. 어스름한 시간에 집으로 복귀했지만 괜찮았다. 힘들기는커녕 또래 일본친구에게 반나절 동안 한국을 알리고 맛 보이고 즐겁게 논 기억밖에 없다. 그녀에게 있어 당시의 한국 여행 중 나와의 시간은 또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


 늘 또래 외국인이 내 일일투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거래처 중 가장 오래된 작은 일본 상사의 70대 할아버지 사장님, 카토상이 계셨다. 회사차에 기사님까지 대동하여 카토상을 모시고 가는 일일 투어의 명이 떨어졌다. 카토상과 남산 한옥마을 이곳저곳 설명을 드리면서 산책을 하고, 서울타워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관람을 마친 후에는 기사님과 만나 회사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카토상과 업무 이외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고, 투어를 마친 후에는 상무님, 팀장님, 대리님이 계신 저녁식사장소에 모시고 가서 비즈니스 미팅 겸 저녁식사까지 하고 오는 코스였다. 일본인 바이어들은 대체적으로 무리하게 술을 권하는 것이 없이 깔끔한 것이 좋았다. 나는 팀의 유일한 여자 사원이었고,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이었지만 다행히 일본 바이어들과의 접대 식사 시간은 괜찮았다. 한복을 입고 조용히 가야금을 뜯는 공연자의 공연을 보며 한정식을 먹거나 정갈한 제주 갈치조림집이나 삼계탕, 보양식들을 천천히 즐기며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며 반주를 즐기는 정도여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루종일 하이힐에 정장을 입고 바이어 투어를 다녀 피곤은 했지만 보람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경험의 하나로써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민숙 씨. 도쿄에서 치카히사상이 친구들하고 온대요. 외근으로 처리해 줄 테니 법인카드 들고 가서 어레인지 해줄 수 있어요?”


도쿄의 회사법인 일본인 직원분과 친구분들이 한국에 놀러 온다 하여 팀에서 명이 떨어졌다. 일본인 언니들의 일일투어에 합류하라! 나는 좋았다. 그녀들과 광화문과 명동, 인사동을 함께 돌고 한국식당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고 즐거웠다. 그중 한 명인 마쯔이 언니는 유독 한류 아이돌을 좋아해서 나와 더 가깝게 교류를 했고, 그분을 통해 알게 된 일본지인들을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언니가 좋아하는 한국아이돌 콘서트를 가려고 한국을 방문해야 할 때면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드리기도 했고, 함께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안부를 물었으며, 반대로 내가 일본에 놀러 가면 함께 만나 나의 일본 여행 중 즐거운 현지인과의 시간을 선물해 주셨다. 서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듬뿍 준비한 오미야게(기념선물)를 주고받는 것도 즐거운 문화교류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쯔이언니는 내가 사회초년생 때 알게 되어 내 결혼식에도 와주었고, 아들 돌잔치와 백일까지 챙겨  일부러 한국에 와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랬던 언니가 몇 년 전 하늘의 별이 되었다. 하지만 언니가 연결해 준 수많은 일본 지인들 덕분에 나는 지금도 일본에서 손님이 오면 모든 것을 제치고 반갑게 투어를 나가고, 내가 일본에 가면 발 벗고 나서서 나를 챙겨주는 소중한 인연들을 얻었다. 인연은 누구나 만들어질 수 있지만 정성을 다하면 그 진실된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누군가가 신경 써서 준비한 여행에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들에게 우리나라가 좀 더 멋지고 재미있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즐겁다. 며칠 후 오는 일본인 지인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녀가 또 한국에 오고 싶게 알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가볼 곳과 함께 먹을 음식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

이렇듯 나는 내 시간을 쪼개서 나 홀로 문화교류 사절단, 나 홀로 외교관 노릇을 하느라 혼자 분주하다. 그래도 재미있다. 세계 속의 한국도, 저 넓은 다른 세상도 나에게는 신세계고 늘 설렌다. 내가 못 나가면 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우리나라의 좋은 곳들,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알리고 싶다. 나는 나 홀로 문화사절단 노릇을 아마 계속할 것 같다.

왜냐면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보람되니까!


어서 오세요 한국에! 요우코소 한국에!


이 글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일본친구를 이틀간 가이드하고 돌아왔다. 다음 글은 그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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