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기획전부터 마음가짐이 조금 남달랐기 때문에 평소보다 신경 써서 준비해야 했다.
이번 여행메이트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70대 친정 부모님.
요즘 들어 주위 지인들의 아프거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소식을 들으면서 부모님이 두 발로 잘 걷고, 잘 드실 때 함께 자유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깔끔하고 정갈한 일본 온천 마을의 전통 료칸과 카이세키요리를 체험을 시켜드리고 싶어서 이번 여행을 기획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약 45개국의 나라를 여행하셨을 정도로 좋아하시는 여행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계시다. 거의 패키지여행을 다니시지만 가격대가 좀 있는 상품을 선택하면 여행사 연계된 쇼핑을 가거나 너무 힘든 일정이 아닌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하셔서 늘 프리미엄 상품으로 다니신다. 이런 두 분에게 유일한 자유여행은 바로 나와 함께 떠나는 일본여행뿐이다 보니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말씀드렸을 때, 매우 좋아하셨다. 사회초년생 시절, 부모님과 셋이 떠났던 도쿄, 하코네 여행을 시작으로, 아들이 5살 무렵에는 우리 모자와 부모님 이렇게 넷이서 오사카, 교토, 나라를 다녀왔다. 그 여행을 마지막으로. 무려 8년이 흘렀다. 뒤적뒤적 8년 전 우리 넷의 여행 사진을 보고 있자니,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늙수그레한 아들은 어디 가고, 귀엽게 웃고 있는 해맑은 꼬마가 함께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남편과 우리 가족의 삶을 사는 동안 나도 열심히 일본여행을 다녔지만 8년간 부모님과 떠난 여행이 없었음을 확인하니 어쩔 수 없음도 잘 알지만 살짝 마음이 그랬다. 부모님과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음을 알기에, 그래서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주섬주섬 일본 온천여행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기획
여행을 준비하기 전, 나는 우선 대략적인 날짜를 잡고 두리뭉실하게 비행기 값을 검색한다. 날짜를 조절해 가면서 이 정도 가격이면 괜찮겠다 싶으면 여행메이트들에게 통보를 하고, 최종 날짜와 비행기를 정한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을 정할 때 중요한 것은, 도착시간에 따라 이동할 목적지로의 교통수단의 연계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일본 사가현의 대표적인 온천마을 ‘우레시노’에서 1박 전통료칸을 예약했다. 료칸 예약도 날짜가 임박할수록 매진될 소지가 있으니 좀 더 빠르게 준비해야 했다. 사실은 처음에 가려고 했던 쿠로가와 온천마을의 료칸들이 모두 매진이 된 바, 우레시노로 바꾼 것인데, 결과적으로 우레시노에서 더 좋은 료칸과 좋은 물을 만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레시노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바로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비행기 도착시간을 확인하고, 연착이나 짐이 늦게 나올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우레시노로 이동할 버스 티켓을 왕복으로 미리 예약했다. 오는 날 시간도 체크아웃은 오전일 테지만 마을에서 무엇을 할지 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여유 있게 오후 시간대로 예약을 잡았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이기 때문에 최대한 무리한 일정은 피하려고 했다.
일본버스예매사이트는 예약만 하고 결제는 직접 버스터미널에서 해도 된다고 한다. 료칸도 마찬가지.
‘이렇게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거야? 노쇼 하면 어쩌려고..’
예약을 하면서 감탄했던 것은 이런 부분이었다. 료칸 예약 같은 경우는 이메일을 보내 다시 한번 최종 확인을 하고 안심을 했다. 즉, 나는 예약 번호 하나만 달랑 들고 료칸에 가서 이름을 대고 체크인을 하고 숙박 후 결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런 큰 틀이 짜이면 비행기를 예약하고 저가 항공이라 돈을 조금 내더라도 편하게 미리 좌석 지정을 하고 결제한다. 그다음에는 우레시노에서 1박을 하고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와 2박을 어디에서 할지, 어떤 여행일정을 짤지 고민해야 했다. 여행일정에 따라 최적의 위치를 고민해 호텔을 정하고 최종 예약을 한다. 아들도 이제는 성장해 성인 몸집이다 보니 성인 4명이 묵을 호텔을 예약하려는데 남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운 좋게 적당한 위치와 가격대의 호텔을 예약했다. 예전에는 인원수가 많으면 에어비엔비를 이용했는데 훨씬 저렴하고 취사도 되고 호텔보다 방도 넓게 쓸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단점은 호텔과 다르게 체크인 전, 체크아웃 후에 짐을 맡겨놓고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있다. 그런 경우 일본은 지하철역마다 코인로커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캐리어를 보관해 두고 여행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왠지 나이 들수록 이런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호텔을 선호하게 된다. 물론 가격대가 적절한 호텔로 정한다. 우리는 아침에 일찍 나가 밤에 숙소에 들어오는 자유여행자이다 보니까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형태의 고급호텔은 필요가 없다.
셋째 날에는 ‘야나가와’라는 마을에서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1시간여를 이동하면서 뱃사공의 이야기도 듣고 경치를 구경하는 관광을 해보기로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가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 뱃놀이티켓을 예약하려고 들어간 한국사이트가 모두 해당일에 매진이 떠있다. 아뿔싸. 혹시나 싶어 일본인 지인에게 연락하여 야나가와 뱃놀이 예약이 가능한 일본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를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해당일에 예약이 가능한 회사를 전달받아 예약을 하고 확약 메일을 주고받고 나니 이번 여행의 굵직한 예약들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공항을 오가는 교통수단 예약이 남았는데, 이 또한 가는 날에는 새벽 일찍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라서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인천공항 콜밴택시를 예약했다. 여행 후 오는 날은 비행기 시간이 초저녁쯤이라 리무진버스를 이용하기로 예약을 했고, 마지막으로 로밍을 예약했다. 모든 예약들을 완료하고 최종적으로 날씨를 확인하며 부모님께 적당한 옷차림에 대한 안내를 드렸다.
나는 늘 여행 시 고려하는 것이 있는데, 함께하는 여행메이트들이 각자 만족할만한 것들을 단 한 가지라도 일정에 넣는 것이었다. 부모님을 위한 료칸체험 1박, 뱃놀이, 공원산책등을 넣었으니 이번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위한 일정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아들이 좋아하는 로봇에 대한 전시가 후쿠오카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었다. 자이언트로봇 전시와 한 쇼핑몰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건담분수쇼를 한시적으로 하는 중이라 하여 아들을 위한 이벤트로 일정에 넣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우리는 3박 4일 일정으로 후쿠오카, 우레시노, 야나가와 여행을 다녀왔다. 결과적으로 다녀오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과의 자유여행이 무려 8년 만이었고, 아들은 훌쩍 커서 짐도 잘 들어주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쳐지는 발걸음을 속도 맞춰 함께 걸어주었으며 조곤조곤 대화도 나눠주고 끝까지 부모님을 잘 챙겨주었다. 부모님은 연세에 비해 비교적 건강히 잘 다니시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자유여행의 특성상 많이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피곤해하시기도 했다. 그러면 카페에서 쉬시거나 숙소에서 쉴 테니 아들을 위한 일정을 둘이 다녀오라고 해주셨다. 세대가 다르고 체력도 다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따로 각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짐을 챙기고 모시고 다니는 아들 녀석을 보니 이렇게 삼대가 함께 여행을 떠나온 것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1년 후 2년 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점점 연로해져 가는 부모님이시기에, 이번 여행에서 할아버지와 뜨끈한 온천탕에서 목욕을 하는 아들에게 참 고맙고 애틋했다. 그 덕분에 아들은 마지막 날, 할머니로부터 뜻하지 않게 건담피규어를 선물 받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의 최대 수혜자는 이 녀석이 아닐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고작 이틀이 지났다. 공항에 내릴 때부터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돌아와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마치 빠르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서둘러 준비하는 것 같았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은 그대로다.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여행가방을 열어 짐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복기하고 늦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들은 등교를 했고, 나는 주문받았던 쿠키를 굽고 강의 준비를 했다. 집안 정리를 하고 텅 빈 냉장고를 채울 장을 본다.
아들은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여행 가느라 빠졌던 학원 수업 보강까지 척척해내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들에게 몹쓸 잔소리를 많이 했던 엄마였는데, 여행을 다녀오니 아들은 또 한층 성장한 듯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일정대로 움직인다. 더 활기차 보이고, 더 씩씩해 보인다.
여행 중 아들과의 자유시간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아들의 진지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집에 있었다면 못 들었을 속내도 들을 수 있었고, 학교, 집, 학원을 전전하며 챗바퀴돌 듯 살아가는 아이와 일과 살림으로 바쁜 엄마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장소, 색다른 무드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던 여행이었는데, 과감히 진행하기 잘한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가 이따금씩 하시는 말씀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언제 이렇게 손주랑 딸이랑 넷이서 여행을 떠날까 싶어. 언제 함께 이렇게 온천을 할까. 언제 함께 이렇게 한 방에서 며칠씩 잠을 자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지나가는 말로 하셨지만 듣고 있는 딸은 마음이 사무치게 슬프다. 부모님과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이 함께 한 시간보다 많지 않음도 알지만,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추억들을 더 많이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