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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Nov 03. 2023

타인의 여행을 존중하는 자세

왜 그렇게 일본을 자주 가요?



"일본을 왜 그렇게 자주 가니?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여행은 자고로 멀리 가 줘야지. 이국적인 유럽, 드넓은 아메리카대륙, 혹은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는 가야 여행 아니겠어?”


“휴가면 휴양지 리조트에서 푹 쉬다 와야지. 뭐 그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죽자 살자 돌아다녀? 피곤한 건 질색이야.”


“도쿄만 가서 뭐 할 게 있다고. 2박 3일이면 볼 거 다 봐.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난 일본은 별로."


혹시 위의 문장들과 같은 말을 내뱉으며 누군가의 기대에 찬 여행에 찬물을 끼얹은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도 그렇고. 그리고 이 문장들은 내가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문장들을 나열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사람들은 다 다른 여행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왜들 이렇게 타인의 취향에 훈수를 두는 것일까.


좋게 말하면 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민족의 특성상 편한 사이라서 툭툭 할 수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행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좋은데, 여행이 각자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와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하면서 말을 내뱉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여행은 그 누구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어느 여행지가 누군가에게 좋았다고 해서 모두에게 그런 것도 아니다. 또 그때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 계절, 날씨, 동행자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여행지의 느낌은 모두에게 다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가끔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고, 자신의 경험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로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말을 해서 여행의 무드를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지로 어디를 선택하든, 그 사람이 여행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20년간 스무 번은 넘게 일본을 다녀온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두 번 세 번 가는 해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왜 또 일본을 가냐고 뭐 볼 게 있냐고 묻던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말이 있다.


“제 취향이거든요.?”


나는 일본어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전에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본 관련 업무를 해보고, 인턴 마무리 후 한 기업체의 일본 관련 부서에 입사해 약 6년여를 일했다. 영문과를 꿈꾸던 나는 갑자기 고2 때 일본친구들과 해외펜팔을 하면서 일본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본어가 재미있어서 전공으로 일본어를 선택했고, 일본음악과 일본드라마를 즐겨보면서 언어와 문화에 재미를 느꼈다. 쉼 없이 달려오는 일상 속에서 짧게나마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인 ‘일본’은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리고 다녀온 후에도 시차적응에 대한 부담도 없고 현실 복귀가 비교적 빨리 가능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함께 일본의 다양한 도시들을 틈만 나면 여행했다. 다행히 남편도 일본의 정취, 음식, 다양한 일본 소도시 여행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꾸준히 일본친구들과 교류를 하며 우정을 쌓다 보니 일본 어느 도시에 가면 일본 친구를 만나 현지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었다.


바빠서 혹은 팬더믹 때 일본을 못 갈 때에는 일본드라마를 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일본 각지를 출장 다니며 현지 식당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는 샐러리맨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와 옹기종기 작은 다찌석에 모여 앉아 셰프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인생이야기를 나누는 ‘심야식당’ 같은 드라마를 보며 문득문득 일본 여행의 발동이 걸리기도 했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대화를 무리 없이 하기 위해서, 바쁜 삶 속에서도 꾸준히 일본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름의 시간과 노력들이 있기도 했다. 대학에서 전공까지 했는데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언어는 안 쓰면 까먹을 테니 그게 너무 싫었다.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아서 더욱더 악착같이 일본을 드나들고 일본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돈독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에 지금은 소중한 인연들을 사귀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과 언어 교류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일본을 자주 다니다 보니 자주 가던 도시들의 지하철역과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쇼핑몰과 거리의 풍경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났다. 지난번에는 이 길로 가보았다면 이번에는 다른 길로 돌아서도 걸어보고, 지난번에는 이 거리에서 이 가게에 들렀다면, 다음에는 맞은편 가게를 들러본다던지.  몇 년 후 들른 그곳의 변한 풍경들을 보며 세월의 흐름도 만끽하고 그때의 추억도 더듬어 보았다.


여행에 있어서 어디든 한 도시에 대해 몇 박 며칠 코스로 정해진 루트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루트는 어디까지나 패키지여행상품과 누군가가 추천하는 참고용 여행 루트일 뿐, 여행 계획은 내가 세우고 내가 떠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 누군가의 여행에 대해 훈수를 두는 일은 삼가였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일본 여행에 관해 물어본다면 기꺼이 참고자료들을 최대한 공유해 줄 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꼭 덧붙이는 것이, 함께 떠나는 여행메이트들의 취향을 넣는 코스를 꼭 넣어주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루트가 정답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추천이라는 것도 말이다. 나 역시도 내가 다녀본 여행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해 줄 때에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넘쳐나는 여행자료들이 인터넷상에 너무도 많다. 그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내 것을 만들어 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는 적어도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계획을 짜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앞으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 등 여행을 직접 계획해 봤다면 그 여행의 여운도 오래 남는 것은 당연할 테다.


우리는 그래서 여행을 떠나고, 타인의 여행을 보고 듣고 탐닉하며 또 나만의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  열두 발자국,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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