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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Nov 25. 2023

일본인을 위한 서울여행 가이드

한국에 여행 오는 사람들을 위해




 최근,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일본친구를 위해 이틀간 여행가이드를 하고 돌아왔다. 이번에 일본에서 온 친구는 온라인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강사이면서 대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하는 교직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프리랜서 강사이면서 각자 가르치는 것은 다르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친구는 미혼이고 나는 가족이 있는 주부이지만 공통점은 우리는 커피를 좋아하고, 예쁘고 맛있는 카페를 좋아하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N잡러 이면서 큰돈을 벌진 못해도 우리가 버는 돈을 모아 여행에 쓰는 데에 의미를 크게 두고 사는 동갑내기라는 것이다.  


나는 이 친구를 팬더믹기간 중 온라인 원어민과 화상일본어를 하는 플랫폼에서 선생님과 제자로 만났다. 전공했던 일본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일본친구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며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신경을 썼지만, 팬더믹기간은 아무래도 서로 왕래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가끔 온라인으로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 플랫폼에서 만난 이 친구와는 공교롭게도 동갑이었고, 3년 전부터 주 1회 50분씩 혹은 2주에 한 번씩이라도 일본어 프리토킹을 하며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나눈 시간들이 쌓여서일까,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는 일본어 선생님이자 친구는 내 휴가기간에 맞춰 한국에 놀러 오기로 계획을 짰다.


한국 여행이 처음이라는 일본친구에게 숙소 위치로 명동을 추천했다. 서울 지리에 대한 감이 없는 지라 이 정도 위치에 호텔을 잡으면 좋을 것 같다 라던지, 여기가 관광하기에 동선이 왜 좋은지, 인근에 가 볼만한 곳 등을 설명해 주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적인 기와가 멋들어진 우리나라의 궁, 그리고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 산과 녹지가 멋지게 어우러지고 개성 있는 맛집과 고즈넉한 카페들이 있는 그런 곳. 관광하기 좋은 서울 명동, 인사동, 광화문, 안국, 북촌, 종로일대는 서울여행 오는 외국인들에게 최적의 여행 스폿이다. 특히 커피와 디저트, 브런치카페를 좋아하고 잘 찾아내는 남다른? 검색력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친구에게 그야말로 ‘찐 맛집’, 좋은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 마침 친구도 서울 관광에 관한 잡지를 탐독하고 온 터, 친구가 가보고 싶다고 말한 곳을 위주로 하여 외국인이 좋아할 것 같은 카페나 식당들을 이동 동선에 따라 맞춰 가이드를 짰다.


최근 명동에 다녀온 사람들은 아마 목격했을 터. 작년부터 서서히 팬더믹이 풀리면서 유령 도시 같았던 명동은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기차진 것이, 임대 딱지가 가득했던 빈 상가들이 점점 채워지고 길거리는 사람들로 북적 인다. 명동 메인도로에는 평일 저녁에도 환한 불빛 속 먹거리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현지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 음식을 이 가격에 여기에서 먹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의구심이 가득 드는데, 역시나 이곳 포장마차의 대부분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다. 다양한 나라와 인종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길거리 음식들을 탐닉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전 세계 인종을 다 만날 수 있는 관광지를 가려면 이태원이 아닌 명동을 가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명동은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방문하는 글로벌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일본어로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만나는 것을 ‘마찌아와세’ (待ち合わせ)라고 한다. 친구와의 ‘미찌아와세’ 를 인기가 많아 오픈런(오픈과 동시에 입장할 수 있게 일찍 가는)해야 하는, 명동성당이 보이는 최적의 뷰를 자랑하는 에스프레소바 ‘카페 몰토’ , 오픈시간 10분 전으로 정했다. 오프라인으로 만남은 처음인데 친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우리는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근사한 성당뷰를 눈에 담으며 카푸치노와 꼰빠냐 한잔, 무화과와 크림이 어우러진 크로와상, 티라미수로 여행의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서로 들고 온 선물을 주고받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카페 안은 점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이곳이 서울인지 어느 나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나 역시도 묘하게 그들 속에 스며들어 타국에서 명동에 놀러 온 여행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카페를 나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먹고 빠져야 하는 ‘명동교자’에서 칼국수와 교자를 먹기로 했다. 타이밍 좋게 들어가 한국 칼국수와 만두, 칼칼한 마늘 김치의 맛을 제대로 맛 보이고 나오니 가게 밖은 이미 엄청난 인파가 줄 서 있다. 가는 곳마다 이른 시간 방문 덕에 기다림 없이 입장을 하니 친구는 계속 감탄을 했다. 이 또한 나 역시도 그동안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과 살면서 터득한 팁이라면 팁일 터. 현지인이라고 모두 이렇게 아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두 관심과 정보 수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짧은 시간을 내서 멀리서 여행 오는 사람들이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는 계획적으로 동선과 일정을 짜고 수정하고 수정하면서 여행을 하는 편이다. 나의 여행계획 스타일을 반대로 가이드를 하면서도 적용할 수 있다니 묘한 뿌듯함이 든다. 그렇다. 내가 만족스럽다. 좋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명동 일대를 걸으며 친구가 적어온 쇼핑 목록을 보고 한국에서 사가야 할 것 물건들을 추천해 주었다. 소화도 시킬 겸 명동을 가로질러 다음 코스로 정해둔 덕수궁까지 걸었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일제강점기 잔존물인 화폐박물관과 구 서울시청건물의 의미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최신 서울시청의 모습, 플라자호텔 앞 광장과 쭉 뻗은 광화문 광장에서는 월드컵 응원과 민주주의를 외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의 데모 장소이기도 한 것, 등등 그동안 남편과 아들과 다니면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내용들을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날에는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동상과 전시관, 광화문광장까지 설명을 해준 덕에 의미를 이해하고 혼자 잘 여행했다는 친구다. 배경을 알고 여행하는 것과 아닌 것은 천지 차이일 터. 더군다나 일본과는 역사적으로 불편하게 얽혀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괜히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서 ‘일제 침략, 강점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역사적으로 서로 어둡고 좋지 않았던 시기’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번역해 말하곤 한다.


친구가 서울에 가면 한 군데 정도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싶다 하기에, 마침 ‘덕수궁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장욱진’ 전시를 추천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귀엽고 따뜻한 장욱진 화가의 그림들을 함께 보며 작품 설명을 해주면서 천천히 전시를 즐겼다. 나도 보고 싶어 했던 전시였던 지라 친구에게 일본어로 번역하며 작품 설명을 하면서 덕분에 장욱진 화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눈앞에 멋진 덕수궁 경내가 펼쳐진다. 이국적인 구조물인 석조전과 한국적인 전통 기와와 단청이 아름다운 덕수궁, 가을 단풍과 낙엽이 멋스럽게 어우러져 더 운치 있었다.

덕수궁을 나오면 내가 꼭 추천하는 코스는, 돌담길 앞 ‘리에제와플’ 집이다. 이곳에 들르면 너도나도 이 집 와플을 사서 덕수궁 돌담벼락 앞에 서서 먹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 와플은 다른 집과 다르게 반죽이 고소하고 쫄깃하고 바삭해 풍미가 참 좋다. 아는 사람은 너도나도 이곳 와플을 먹는데, 주로 한국인들이지만 가끔 이 돌담 앞에 서서 ‘와플 먹기’에 동참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면 속으로 ‘당신은 한국인스럽게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계시군요.!’라고 말하며 조용히 눈웃음을 건네게 된다.

덕수궁매표소 바로 앞은 2호선 시청역이다.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으로 이동, 서울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 ‘서울스카이’를 향했다. 나도 실로 몇 년 만에 이곳에 올라보는지 모르겠다. 평일 오후 이곳에 오르는 한국인의 거의 없고 모두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친구와 전망대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고 이곳저곳 설명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전망대에서 서울을 바라보며 친구가 말하기를, 서울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산과 강이 있고 녹지가 풍성한데 현대적인 건물들도 많고 전통적인 유적지도 섞여있어 전체적인 풍경이 아름답고 조화로워 굉장히 축복받은 재미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대해 우리는 보다 더 자부심을 갖고 알리고 누리고 경험해야지 않을까 싶었다. 늘 옆에 있어 몰랐던 것을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통해 깨닫게 되기도 한다.

다시 명동으로 돌아왔다. 명동은 백화점들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인다. 눈이 휘둥 그레 해질 정도의 멋진 영상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백화점 벽 한가득 펼쳐진다. 이 또한 11월에 서울에 들르는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저녁식사로는 명동에 봐둔 간장게장집에 방문했다. 일본친구가 간장게장을 먹고 싶다고 했고, 나 역시도 유독 일본인들이 간장게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이른 저녁시간이지만 2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입장을 했는데, 실로 놀라운 것은 손님 중 90%가 일본인, 나머지는 대만인, 중국인 손님이었고, 직원들도 거의 외국인이었으며, 한국인은 정말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곳은 진정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 물씬 났다. 손님들이 모두 일본어만 말하고 있다. 게다가 더 쇼킹했던 것은 간장게장집에서 누군가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라이브로 한국드라마 OST를 불러주고 있었다. 심지어 노래도 너무 잘하고, 무엇보다도 이 집 간장게장이 너무 싱싱하고 맛있었다. 이 묘한 매력의 간장게장집은 내 생애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일본친구와 그곳에 안 갔으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또 한 번 세상은 신기한 곳도 많고 가볼 곳도 많고 재미있는 곳도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금 ‘경험’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음날, 추적추적 비가 왔지만 다시 친구를 조우했다. 일본친구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었던 브런치카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한옥을 개조한 고즈넉한 느낌의 이곳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음식들을 함께 나누었다. 점점 손님이 차서 어느새 만석이 된 홀을 보고 친구가 감탄을 했다. 모두 한국인이라 제대로 된 한국의 멋진 브런치카페를 온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그렇다! 나 역시도 외국에 여행을 가면 현지인으로 북적이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편인데, 그런 곳에 가면 왠지 내가 제대로 된 곳을 찾아왔다는 그 뿌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 그런 마음을 너무나도 공감된다.

우리는 걸어서 북촌 한옥 마을 중 ‘백인제 가옥’ 관람을 했다. 한국이 처음인 친구는 이곳에서 전통 한옥의 난방 방식과 집 구조를 신기해했고, 기와지붕과 단풍이 붉게 물든 정원과의 어우러짐이 아름답다고 했다. 비 오는 날이라 기와 밑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그 느낌, 나 역시도 이런 여유가 참 오랜만이다 싶었다. 친구가 고즈넉한 한옥에서의 분위기와 느낌을 어느 정도 이해했으려나.


북촌에서 미리 봐둔 디저트카페에 도착했다. 특히 이곳은 식혜나 쑥, 유자, 참깨 등 한국적인 재료들과 케이크를 접목시켜 독특한 무스케이크를 만들고 있었기에 인상적이라 선택했다. 친구와 따듯한 라테와 함께 케이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용하고 깔끔했던 이 카페에서 창 밖으로 바라본 풍광 속에서는 북촌의 기와지붕 집들과 상점들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이 또한 빗속에서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북촌에서의 간단한 투어를 마치고 인사동, 청계천길을 걸어 광장시장을 향했다. 북적이는 광장지시장에서 단골로 가는 몇 군데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 김밥을 주문하고 자주 가던 육회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시 명동으로 돌아와 친구가 치킨을 사서 숙소에서 저녁으로 먹겠다 하여 주문해 픽업까지 시켜주고 나서 나는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홍상, 이틀간 서울 여행 가이드 해줘서 고마워! 홍상도 주말 수업 준비로 바쁠 텐데 서로 파이팅 하고 또 만나자! 또 한국에 갈게. 정말 고마워!”

한국에서 3박 4일간 알찬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친구로부터 카톡이 도착했다. 이 메시지를 보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팬더믹으로 인해 몇 년간 일본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오지 못했었다. 실로 오랜만에 일본 친구 전담 가이드를 하느라 아침부터 밤까지 일본어로 주구장창 수다를 떨었기에 뇌가 쉬지 못했고 목은 아프고 몸은 피곤한데 묘하게 뿌듯하고 행복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누가 일본에서 온다면 지인이든, 지인의 지인이든, 누가 부탁하든 일본어를 쓸 기회가 되면 어디든지 나갔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 회복, 연습, 그리고 흥미롭고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과 멋진 곳이 많은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 외국에서 온 친구에게 맞춤형으로 좋아할 만한 장소를 정해 소개하는 것,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는 힐링이고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일종의 활력소였다.


나에게 여행이 주는 의미가 중요한 만큼, 한국을 방문하는 전 세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여행은 어떤 의미일지. 기왕이면 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또 방문하고 싶고, 아름답고 좋았던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고 기억되면 참 좋겠다.

그래, 삶은 여행, 남는 것은 경험과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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