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삶에 대한 고찰
2월이 어느새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새 학기를 2주 앞둔 학부모들은 점점 착잡해지기 시작한다.
길고도 긴 겨울방학을 예비중학생 아들과 투닥거리다 보니 별거 아닌 것 가지고도 잔소리가 늘어만 간다.
이번 방학은 갑작스러운 시아버님의 병환에이어 장례까지 치르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방학 전에 계획했던 아들의 학습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허탈하기까지 하다.
한편 아들의 학습태도에 화가 나서 으르렁 거리다가도 방학중 제대로 쉰 적도, 여행을 간 적도 없이 그저 먹고 자고 공부하고 학원 다니고 가끔 친구를 만나는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아들 녀석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물어보니 아들의 친구들의 일상들도 뭐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였다. 다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시험과 성적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지 엄마들은 대폭 학원갈이를 했고, 그 와중에 아이들은 각자의 학원시간 사이사이 짬을 내어 잠깐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배드민턴을 치거나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정도가 아이들의 탈출구였다.
이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향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보였다.
가치 있는 일을 꿈꾸고, 꿈을 향해 노력하고 과정 자체를 즐기고 목표를 이루어 성취감도 느껴보고 뭐 이렇게 순탄하게 성장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테다.
사실, 말이 좋지, 결국 지금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대부분의 목표는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이름 있는 대학, 좋은 과에 가기 위한 목적이 되어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학교, 학원, 부모와 함께 여러 가지 전략들을 짜면서 공부를 하고 학교를 선택하고 성적관리를 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부모인 우리 부부도 별 수 없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커왔다. 학원 과외 한번 없이 괜찮은 대학에 간 남편과 학군지에서 학원과 과외로 다져 공부를 해 대학에 간 나는 서로 처했던 환경은 달랐지만 우리는 그저 학창 시절에는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했고 그런 환경이었으니까. 주위에 친구들도 모두 대학을 잘 가는 것이 목표인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좋은 학교를 들어간 친구들도 많았다.
대학입학, 졸업, 취업,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2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때 함께 교실에서 성적과 학원 과외 문제집 야간자율학습과 씨름하던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은 다 다르다. 누가 성공했고 실패했고를 따질 수 없이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도 내가 치열하게 성적관리를 하던 그때 선택한 전공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고 지금도 목표는 자꾸 변하고 있다. 나도 정답을 못 찾았으면서, 아들에게는 대외적으로 보이는 성공한 삶의 모습의 직업들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라며 꾸역꾸역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수학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아들에게 이공계출신 남편이 한숨을 쉬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아빠가 사회생활을 해보니 물론 학창 시절 대학을 안 가거나 다른 길을 선택해서 성공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대부분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멀리 돌아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봤어. 공부도 때가 있는 거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아빠가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대학을 간 사람들이 조금 더 대우받고 조금 더 빨리 많이 돈을 벌고 조금 더 편하게 사는 경우가 많아.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아빠는 네가 고생하지 않고 제때에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나도 이런 말을 부모님께 듣고 커왔고, 우리 부부의 세대, 우리 부부의 주변사람들이 다들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게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평범한 삶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가 재벌 2세쯤 되는 가족이고 주위가 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또 달랐을 테니까.
아들도 잘 알아는 듣는다.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다.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직업군이나 사는 형편들이 비슷해서인지 내가 학창 시절, 13살부터 살면서 입시를 치렀던 이 동네는 30년 전과 변한 게 없이 똑같은 분위기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 아니 지금은 그때보다 치열하다 못해 입시는 전쟁이고 아이들은 점점 공부의 노예가 되어가는 듯하다.
나는 안다. 비단 이 동네만 이런 것은 아니라는 것도. 경쟁이 더 심각한 학군지의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있노라면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린다.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내 아들은 어떤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2월 말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에서 자녀의 대학합격 소식이 들려온다.
아드님이 S대 의대에 합격했다며 커피를 사는 지인, S대 공대합격한 지인의 자녀분, S대 모 과에 지원을 했으나 떨어져서 다른 곳 합격소식을 기다린다는 시댁형님의 아들 소식까지.
왜 죄다 내 주위는 S대지..
S대 합격자가 이렇게 많을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부모의 고충과 엄청나게 쏟아부은 사교육비 이야기를 듣고 나니 또 한숨이 나올 뿐이다.
이제 막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이 갈 길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들의 성적도 모르고 지금 어느 위치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내 아이를 S대 합격소식을 알려주는 저 지인들처럼 정말 치열하게 공부를 시켜왔는가 앞으로 시킬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여전히 물음표이다. 소위 말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 속 기똥찬 아이들과 키워낸 부모님들의 수고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의 수고가 대학을 가는 것이 목표가 되지 않고,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직업을 찾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 견뎌낼 더 많은 고충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 정해진 기득권층의 직업들이 성공한 직업이라 생각하고, 공부를 잘한다면 한 번쯤 그 길을 가보는 것도 생각해 보는 현실에 직면했다.
요즘 대두되는 의대정원증원 이슈를 보고 더욱더 생각이 많아진다. 현재의 학생과 학부모층의 의견, 사교육업계의 의견, 학교의 의견, 그리고 증원을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의사들의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모두 다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 나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방학중 아들의 진로검사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순위 2순위 학과와 직업군은 모두 이공계였다. 심지어 과학, 연구 탐구형에 나열된 학과들을 보니 그중 요즘 대두되는 의대도 있었는데, 이런 검사지를 받아 들고 나니 수학이 어려워 죽을 것 같이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엄마랍씨고 하는 말이라고는,
"이게 네가 수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야."라고 현실적인 말을 내뱉어 버린다.
우리나라의 입시는 여전히 아직도 모로 가도 수학이니까. 수학이 어려운 아들은 착잡하다.
문과 머리인 내 머리를 닮아서 그런 건가 싶어 괜히 미안하기까지 하다.
내 아들은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한편 엄마인 나도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동네 특성상 엄청나게 달리고 있는 주위 환경으로 인해 불안감과 학업 스트레스를 적잖게 호소하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로서 해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 하지만 결과에 아쉬움도 있었고, 그래도 전공 살려하고 싶었던 일도 하고 학창시절 꾸던 꿈을 일부 이루기도 했지. 그런데 지금 엄마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잖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몰라. 지금 너의 관심과 목표가 전부가 아닐 텐데 지금은 잘 모를 거야.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고 우리는 경험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 것이 많거든. 중요한 것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그래야 적어도 아쉬움은 없을 테니까. "
사실, 나도 지금 가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남편도 그렇고.
아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북돋아줘야 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속의 '성공'도 어쩌면 지금과 별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도 기득권층 사람들의 '성공'만이 조명되는 이 사회에서 좀 더 폭넓게 재조명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성공'의 형태가 지금보다 더 다양 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