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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r 18. 2024

화창한 봄을 맞이하는 자세



친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시원한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을 마주한다.


“아! 상쾌한 아침이다! “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좀 지난 시간이라 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다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이따금 보이는 캐리어를 끌고 가거나 툭 하고 어깨에 배낭을 걸치고 서울 여행 책자를 들고 걷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보인다. 


“참 좋은 계절에 우리나라에 여행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다.

화창한 날씨를 마주하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더 가볍다. 이 평일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날이 추워질 거라고 반복해서 말하던 어제 뉴스 기상캐스터의 보도에도 무색하게 아침 햇살도 좋았고 날도 이 정도면 따스웠다. 하지만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인지라 조금만 찬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커져도 목이 붓고 잠기다 보니 어떻게 서든 늘 목을 감싸 맨다. 대신 살짝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스카프는 얇아졌다.


나는 화창한 날씨가 좋다. 유독 싫어하는 날이라면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이 랄까.

뭔가 해야 할 것들을 계획적으로 해내야 하는 사람으로서 궂은 날씨는 이따금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우선 이동이 불편해져서 싫었다. 차가 막히는 것도 싫었고, 걸을 때 종아리에 물이 튀거나 눈이 와 교통마비가 되거나 빙판길을 걸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학창 시절 빙판길에 미끄러져 다쳤던 사고 이후로는 더욱더 눈 오는 날 외출을 기피하게 되었다.


반면, 남편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그게 내 남편 이라니. 가끔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함께 걷자고도 하고, 비가 정말 장대비처럼 주룩주룩 오는 날 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앉아서 빗소리 듣는 것이 좋다고 했다. 비가 와서 기분이 좋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였다. 연애할 때부터 시작해 그런 그의 감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언제부턴가 들려왔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후드득후드득후드득.’

조금씩 천천히 비에 대한 선입견과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들도 비를 좋아한다.

아들이 어릴 때 비가 오면 운전하기도 힘들고 걸을 때 비가 튀는 것이 싫어서 잘 나가려 하지 않는 엄마에게 아들은 물었다.


“엄마, 비가 오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우리 우산 쓰고 걸어요.”


아들의 요청이니 못 이기는 척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걷기를 여러 번.

이제는 빗물이 들이닥쳐도 괜찮을 크록스를 신고 둘이 첨벙첨벙 비를 튀기며 걸어보고 각자의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빗물 속에 흘려보낸다. 빨리 들어가자고 볼멘소리를 아들에게 내뱉으면서도 우산을 쓰고 해맑게 걷고 있는 아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서 생각한다. 


‘그래, 저렇게 좋다는데. 이 정도 비쯤이야.’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은 여전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 아침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비 냄새가 좋다며 맡고 있고, 아파트 꼭대기층이라 지붕 처마 끝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감성이 살아있는 아이로 크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비 오는 날을 싫어했던 나의 꼿꼿했던 내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살면서 싫어도 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고, 겪어보면 또 막상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 날씨가 내가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꺾을 만큼 엄청난 이유가 되지는 못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물론 천재지변으로 인한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은 경우는 다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기분은 날씨와도 많은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딱히 개의치 않는 편이다. 내 기분이 날씨로 인해 좌지우지될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데 있어서 날씨는 방해만 안되면 다행이지 뭐.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볼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한고비를 넘기고 또 한고비를 넘기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에 있어서 스트레스관리와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화창한 날씨, 햇살이 주는 따듯한 기운을 마주할 때 사람이 더 활기차짐을 느낀다.

햇살에 자외선에 노출되어 비록 내 광대에 기미가 하나 둘 더 생길지 언정, 적당한 광합성을 해주며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하루하루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데 있어 화창한 날씨가 더 활기찬 에너지를 북돋아준다면, 나는 기꺼이 지금 바로 이 시기, 봄이 오는 요즘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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