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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Oct 06. 2021

내 마음의 안식처

조금은 느린 삶을 통해 느끼게 된 감정 정리 글

 나에게 내 마음의 쉴 곳을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생각보다 잔잔하고 고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공부하느라 바빴던 10대, 당차고 콧대 높은 아가씨였던 20대를 보냈고, 30대 역시 새로운 일과 육아를 혼자 감당하면서 바지런하게 삶을 살아온 편이었다. 그러다가 40대를 시작하며 뜻하지 않게 쉴 시간을 얻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내 삶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고, 변화는 내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되었지만 몸과 마음을 재정비할 여가를 선물하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 공부와 일, 육아에 매여 정신없이 보내느라 휴식이 어색한 사람이 된 것이 문제였지만.    


 나는 조금씩 변화된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먼저, 베이킹 일을 하면서 망가져버린 건강을 챙기는 일이 급선무였다. 베이킹에서는 핸드믹서를 잡고 휘핑을 하거나 반죽을 손으로 미는 작업들이 많아서 어깨와 손목, 등근육 통증을 늘 달고 산다. 또한 계속 서있거나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며 일을 하기 때문에 하체 순환이 잘 안 되는 나로서는 하루 종일 강의가 있거나 무리한 다음날에는 아침에 발바닥을 딛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마침 이사 오기 전까지 꾸준히 다니던 댄스가 생각났다. 아쉬운 마음에 유튜브를 보고 댄스를 시작했는데 집안에서 하려니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친구가 사정상 본인은 쓰지 못한다는 헬스 PT권을 선물로 줘서 난생처음 헬스 PT를 시작했다. 트레이너 덕분에 파티시에의 고질병인 어깨와 등 통증이 점점 완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기에 온전해지려면 하루에 몇 시간씩 매일 운동을 하라는데 그건 못하겠고. 덕분에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통증들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꾸준히 하기 어려워서 멈췄던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좋아하지만 여유가 없어 미뤄둔 것들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나는 내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는 또 다른 창작 행위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늘 사람들과 어울리고 북적이는 것들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좀 내면을 되돌아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면서 최근 글쓰기의 매력을 느끼고 기록을 해보니 빠르게 돌아가는 하루의 삶을 조금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했다. 천천히 진솔하게 내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이 쓴 잔잔한 글들을 읽으면서 내면의 울림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과정을 통해 찾은 내 삶의 반짝이는 장면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베이킹에 집중하는 시간들. 반죽을 해서 오븐에 넣고 난 후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과 구워진 디저트들을 정성껏 포장하거나 선물할 때의 기쁨.
케이크 돌림판을 사르르 돌려가면서 새하얀 생크림을 매끈하게 아이싱 한 후 몽글몽글 크림을 짜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전달드릴 때의 그 기쁨과 뿌듯함.
살랑이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드리워진 소박한 식탁.
신선한 채소와 과일, 약간의 브레드와 수프, 따듯하게 내려진 핸드드립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브런치. 여기에 편한 친구와의 잔잔한 수다가 함께라면 금상첨화.
필터 커피를 내릴 때. 특히 물줄기가 원두가루를 통해 여과지로 스며들 때 들리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따스한 온기, 그리고 이내 올라오는 향긋한 커피의 향.
귀여운 고양이의 애교와 발바닥, 웅크린 식빵 자세.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활짝 웃는 밝은 미소와 꼭 안아주는 따듯한 남편의 품 속.
엄마의 모든 반찬들 비롯 부모님의 존재 그 자체. 나의 사랑하는 자매들과 소중한 친구들과 지인들과의 소소한 시간들.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자 바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앞만 보며 바쁘게 살 때에는 보이지 않았고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들이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생각보다 소소한 것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 2년 여간은 제자리에 멈춰있는 기분이 너무도 싫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갖게 된 시간적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했고 조금은 느린 삶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은 멈춤이 나를 치유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느린 삶을 살아가는 중이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미리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하고 아등바등 거리는 삶을 살아왔던 나에게 함께 산지 14년 차에 접어든 남편이 해주는 다정한 말들은 큰 힘이 된다. 최근 새로운 곳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와서 이걸 할까 말까 고민을 하던 중 그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네가 하고 싶은 거 뭐든 열심히 해보라고. 다만 여유를 가지고 너무 무리한 일정은 잡지 말고 여유 있게 너 자신을 챙기라고 답을 보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응원해주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 편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글을 쓴다.              


                  


부산 모모스커피에서 만난 웅크린 식빵자세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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