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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Apr 20. 2022

스무 살 무렵, 그때는.

사람이 재산.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 엘프리드 E. 하우스먼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어느 현명한 사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크라운, 파운드, 기니는 다 주어도 네 마음만은 주지 말거라. 진주와 루비는 모두 주어도 네 자유로움만은 잃지 말아라.”

하지만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으니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은 늘 대가를 치르는 법. 그 사랑은 넘치는 한숨과 끝없는 후회 속에서 얻어진단다.” 지금 내 나이 스물하고 둘, 아, 그것이 진리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40이 넘은 이 나이에 스물, 스물 하나의 나를 상상해 본다. 아득함과 아찔함 그리고 아련함과 풋풋함을 느낀다.


20대 때에는 영원히 내가 청춘일 듯이, 지금의 40대의 삶을 전혀 그려보지 못한 채 현실을 사느라 즐거웠다. 엄마가 해주시는 따듯한 밥 먹으며, 주시는 용돈 받으며 대학교를 다녔다. 아이들 과외도 하며 추가적으로 용돈을 벌면서도 부모님께서 챙겨주시는 등록금, 용돈은 당연한 줄 알았고, 내가 벌어서 모은 돈은 그밖에 내가 하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을 더 사는 등 부족함 없이 현실을 살았었다.


평탄한 집에서 자란 무난한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모두 다 우리처럼 이런가 보다 했고, 학창 시절 맹렬히 학교와 사회와 고단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는 학우들의 삶들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솔직히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너무 걸출하게 놀았던 것도 아니요, 너무 공부만 했던 것도 아니요, 돈이 궁해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던 것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다.


외국어 전공자이지만 여자애가 한국을 떠나 혼자 살면 큰일 날 것처럼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생각과 나 역시도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고 나의 안위와 가까운 미래를 걱정하는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에 자꾸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내 욕구를 억누르고 여느 대학생들처럼 대학생활을 즐기면서 천천히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장기 어학연수, 유학은커녕 장기 여행도 못 가본 채, 방학 단기 연수로 두 달간 일본 기숙사에 살아본 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렇게 몸을 사리고 걱정이 많았을까.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뭐 그리 두려웠을까..


더 멀리 머나먼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인 채, 나는 한국에 머물며 대학생활을 즐기고 차근차근 스펙을 쌓아가며 취업준비에 돌입했고 1년 휴학 기간 동안 먼 곳을 여행 가기는커녕, 과외와 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영어와 일본어 학원을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합격을 했고, 졸업식을 이틀 앞두고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나의 스무 살 무렵, 여행도 하고 연애도 하고 미팅 소개팅도 하고 엠티도 가고 동호회 활동도 다양하게 했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거쳐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곤 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좋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즐거웠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 속에만 있다가 보다 폭넓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면서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면서 점점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홀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내 속에 꿈틀대는 그 무언가를 좀 더 일찍 깨우쳤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었다.


이것 때문에 난 안돼, 저것 때문에 난 안돼, 하고 싶은 욕구는 있는데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서 안된다며 자꾸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고 보니 스무 살 무렵, 참 아름답고도 찬란한 때였다 싶다.  그땐 잘 몰랐었던 것이 아쉽지만, 40이 넘은 지금은 그때 보이지 않았던 혜안이 생겼고, 그때 발견하지 못한 그 무언가를 지금에서야 갈고닦기에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들 속에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움을 얻고, 세상 밖을 경험한다.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한 스무 살 무렵의 나.


나는 그때 좀 더 당차게 살았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여즉 남아 있다.


그땐 몰랐고 지금은 알겠는 그 무언가가 진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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