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는 커피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길에는 한 블록도 채 못 가서 커피숍이 즐비하고, 심지어는 같은 건물에 카페 두 개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상권을 내줄 때, 상도는 어디로 간 것일까. 덕분에 커피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서 좋긴 하지만, 자영업자를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경쟁 심화의 끝은 과연 어디일 것인가 싶다.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원두들이 수입되고 커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며 카페의 트렌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즐길 수 있는 커피의 종류도 정말 다양해졌는데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커피 원두 원산지 이름 몇 개만 알고 내 입맛에 맞는 걸 기억해두고 주문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커피 이름에 농장이름, 가공방식까지 집어넣어 길어진 커피 이름들이 늘어나서 외우기는 거의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젠 워낙 다양한 맛의 커피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내가 원래 좋아하던 묵직한 편의 커피를 벗어나서 뭐든지 새로운 커피가 나오면 경험해 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내가 처음 커피를 맛봤던 것은 달콤했던 한국식 믹스커피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손님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는 종종 커피 타는 것을 나에게 맡기셨었는데, 스테인리스 보울에 믹스커피 몇 포를 붓고, 뜨거운 물을 넣은 후 휘휘 젓고 각 얼음을 잔뜩 넣어 동동 띄워서 내드리곤 했었다. 그날도 손님이 와서 커피를 탔던 날, 나는 엄마 몰래 호로록 차갑고 달콤한 냉커피의 맛을 양껏 보고 난 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밤에 잠이 안 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내가 커피를 배웠고, 지금은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나는 평소 집에서 수동 그라인더로 홀빈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 해서 마시는 커피를 선호하고, 카페에 가면 라떼를 주문한다. 슴슴하고 예민한 입맛인 나는 커피를 통해 다양한 향과 맛을 느끼며 오감을 끌어올리곤 한다. 이사 오기 전, 친한 카페 사장님과 커핑 모임(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것. 커피의 향과 맛의 특성을 평가할 때 쓰는 방법)을 하고 회원들께 내 디저트 케이터링을 제공했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커핑’을 처음 알게 되었고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하고 다채로운 단어들로 맛을 표현하는 분들의 언어에 신선함과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커핑을 통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맛의 커피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평소 좋아하던 묵직한 원두에서 벗어나 이제는 신맛이 나도 과일향이 나도 카카오나 플로럴 향과 맛이 나도 다 괜찮다. 그에 따른 특징을 알아가고 세상에 이런 맛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자체는 나에게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디저트를 연구할 때에도 맛이 참 중요한데, 커피와 디저트는 떼려야 뗄 수 없으니까. 이 커피는 이 디저트와 페어링 하면 어울릴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적어도 카페에 가서 디저트와 커피를 고를 때 지키는 나만의 철칙이 존재한다. 커피는 아마 내 위가 허락하는 한 죽기 전까지 즐기고 싶은 기호식품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오전 병원을 들렀다가 옆 건물에 베트남 커피를 한다는 곳이 생각나 들러보았다. 언젠가 베트남에 살던 친구네 집에 묵으며 여행을 했었는데, 단 걸 좋아하지 않는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덥고 습한 날 마신 차고 달달한 연유가 들어간 베트남 커피는 매력적이었고, 덥고 습한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이렇게 쓰고 달달하고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는 그들의 기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후 동남아시아에 빠져 여러 곳을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동남아 특유의 연유 들어간 시원한 커피의 맛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늘 만난 베트남 코코넛 커피. 동남아시아를 좋아하고 코코넛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소한 코코넛 맛이 스며있는 커피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느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그 나라 특유의 커피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한국에서 너무나 고급진 원두들을 맛보고 있긴 하지만, 여행지 그곳 특성에 맞는 커피들이 주는 매력이 있으므로, 나는 오늘도 또 여행과 커피를 연관시키며 잠시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