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교시절 , 좋아하는 것에 열광했던 그때.
고교 3년은 입시에 찌든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게 마냥 싫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 나이 때에는 모두 다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고, 그 삶이 당연함을 받아들이고 입시가 끝나는 날, 우리는 ‘해방’이라는 생각으로만 살았던 것 같다. 마치 대학 가면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렇게 고교 3년을 버텨냈다. 그다음이 진정한 인생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땐 잘 몰랐었지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밤 10시, 학원 차를 타거나 과외에 늦지 않기 위해 마중 나오신 엄마 차를 탔다. 수업을 마치면 보통 밤 11시 반이나 12시. 집 앞 독서실에 가서 문 닫는 2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잠을 청했다. 주말에는 부족한 과목 팀을 짜 가까운 강남의 이름 모를 학원에서 스타강사의 열띤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당시 학구열이 높은 우리 동네 고등학생들은 웬만하면 다들 이런 삶을 살았고 부모님 말 잘 듣는 우리는 이런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친구들과의 우정, 취향을 나눴고 조여 오는 성적표의 오르내림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공유하며 그렇게 고교시절을 보냈다.
결혼 후 다른 동네에 살다가 2년 반 전 다시 예전에 살던 이 동네로 이사 왔고, 나는 우리 엄마처럼 이 동네에서 내 아들을 키우게 되었다. 엄마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 동네에서 아이 셋을 키워 내셨을까. 보이지 않는 싸움이 가득한 이 속에서 나는 내 아이를 위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 것인가...
고교 3년 동안 공부 이외에 나는 다양한 취미활동들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스트레스들을 버텨냈었다. 친구들과 앙케이트북이나 교환일기를 쓰거나 떡볶이나, 팥빙수를 사 먹던 시간들. 그리고 공부는 해야 하지만 나만의 포기할 수 없는 취미생활들을 이어나가며 그렇게 버텼었던 것 같다.
팝송을 듣고 영화나 미드를 보면서, 해외 펜팔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공부를 했고, 재미있어서 영어를 즐겼고 영문학도를 꿈꿨다. 고2 때 일본인과 펜팔을 하면서 일본어에 빠져서 일본어 전공으로 전향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특히 해외 팝그룹, 특히 서양 보이그룹들을 좋아했었다. 가장 좋아했던 그룹은 아일랜드 그룹 Boyzone. 당시 팝 잡지를 사고 아일랜드 친구와 펜팔을 하면서 그들의 잡지 기사와 사진들을 모았으며, 그들이 한국에 내한 공연을 왔던 때,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들고 사인회에 가거나, 애청하던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그들이 출연한다 하여 정성껏 포장한 초코파이와 긴 영문 편지를 보냈고, 라디오에 소개되기까지 했었다.
Boyzone뿐만이 아니었다. Backstreetboys, Bed and breakfast, 911 등등 고교시절 나는 백인 아이돌 그룹들 위주로 좋아했었고 각 나라의 친구들과 펜팔을 하며 영어공부와 덕질을 이어나갔다. 물론 H.O.T덕질도 함께 였으나 소심하게 잡지나 사진을 모으고 음악을 듣고 방송을 녹화하는 등 그 정도의 덕질이었다.
게다가 용돈이 생기면 매주 우체국에 들러 우편비로 거의 탕진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해왔던 해외 펜팔,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외국 친구들과 영어로 편지를 쓰며 우정을 쌓아가는 이 시스템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기에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해외 펜팔을 통해 충당했던 것 같다.
나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해외 펜팔 전문가로 통했는데, 펜팔이 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나서서 연결을 시켜 주기도 했다. 나는 당시 최대 20여 개국 친구들과 펜팔을 주고받았는데 그중 ‘모리셔스’라는 작은 섬나라 친구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매우 흥미로웠고, 그중에는 몇 년간 편지로 서로의 삶을 공유했던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아무래도 사춘기 시절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또래의 친구들과는 오랫동안 서신을 교환했고, 나는 각 나라의 당시 10대의 소녀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담은 편지들을 버리지 못한 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나의 고교 3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다시 겪고 싶지도 않은 그런 시간들이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음 싶지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하던 열정 가득했던 10대 소녀였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덕분에 지금, 좋은 추억이었음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