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에 그림을 그리는 일

아들 생일 케이크와 함께 성장했다.

by 글짓는슈



차갑게 보관한 신선하고 부드러운 생크림, 촉촉하게 숙성시킨 케이크 제노아즈 시트, 케이크의 촉촉함을 더해 줄 미리 끓여 놓은 시럽. 케이크 돌림판을 부드럽게 이리저리 돌리면서 쓱싹쓱싹 펼쳐 크림을 바르고 매끈하게 윗면 옆면 다시 윗면 크림을 정리하는 스패츌라는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인다. 어느새 뚝딱 도자기처럼 깔끔하게 크림을 아이싱해 매끈한 케이크 하나를 완성해낸다.


지금은 케이크 하나를 금세 뚝딱 완성해내지만, 당연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지금의 실력에 이르렀다. 이제 어떤 종류의 크림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매끈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그리고 베이킹할 때 가장 재미있고 자신 있고 보람된 작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케이크’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들이 11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집에서 홈베이킹 클래스를 시작하였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 생일달에 생일 파티용 간식이나 케이크, 혹은 행사비를 선택해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베이킹하는 엄마이다 보니 아들을 위한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어 보내겠다고 했다.

세 살, 그래 봤자 두 돌이 채 안된 아이가 당시 좋아했던 것은 꼬마버스 캐릭터였다. 케이크에 크림을 바르고, 버스 모양으로 케이크 시트를 재단해 잘라 올린 후 파란색 크림을 바르고 검은색 크림으로 창문을 칠했고 버스 번호도 적어 넣었다. 처음이라 어설픈 캐릭터 케이크였지만 다행히 아들은 케이크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고 생일파티 날 아이의 케이크는 대인기였다. 그 후에도 4살, 5살, 6살, 아들이 성장할수록 매년 생일파티 케이크로 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케이크 위에 그려주었다. 남자아이다 보니 주로 히어로물 주인공들과 로봇이었고, 매년 생일파티를 친구들과 함께 성대하게 해 주었는데 케이크를 비롯 베이커리, 답례품 쿠키까지 모두 직접 구워 준비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만드는 케이크가 나의 연습이었고, 실력의 변화가 현저히 보였던 결과물이었으며 대중에게 나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의 작품을 본 지인들이 아이 생일파티 케이크에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소소하게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케이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케이크 그림보다 더 복잡한 그림들을 의뢰받기도 했는데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안을 수정하고 여러 번 케이크 위에 그림을 그렸다가 엎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결국은 해냈다. 내 배 아파 출산한 듯한 내 자식 같은 케이크를 고객님 두 손에 전해드리고 난 후,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해질 때쯤, 생일파티를 마친 어머님으로부터 메시지와 사진이 도착한다. 사진 속 아이는 생일파티에서 내가 만든 케이크를 앞에 두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잔뜩 산 시선과 함께 밝게 웃으며 행복하게 초를 불고 있다. 이 순간의 아이의 행복감, 기쁨을 위해 엄마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케이크 위에 그려줄 수 있는 나 같은 파티시에를 찾아다닌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그 마음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도 알기에, 보다 더 멋지게 케이크를 만들어 줘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렇게 점점 동네에서 케이크 위에 신선한 생크림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곳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먼 거리에서도 케이크를 주문해 픽업하러 오는 분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별한 날, 특별한 케이크가 필요해 연락을 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왔다. 생일, 프러포즈, 취업 축하,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개업 축하 등등.. 케이크를 만들지 않았다면 몰랐을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또한, 고객들의 후기 사진을 받아보면서 내가 고심해서 만든 케이크가 고객님 두 손에 전달된 후 행사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고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그 자리를 축하해주러 온 모든 사람들이 내가 만든 케이크 주위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초를 불고 축하의 말을 건넨 후 맛있게 드시겠지. 그리고 말씀하시려나.


“이 케이크 너무 맛있다! 디자인도 너무 예쁜데! 어디 거야?”


내 손끝에서 만들어진 케이크가 이렇게 멋지게 자신의 한 몸 불살라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멋지다. 멋진 일이다.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는 케이크라니.


“아들, 이번 생일 케이크는 어떤 그림을 그려 줄까?

“응, 엄마 나는 이 그림이 좋아요, 이건 어때요? 이 포즈로요!”


어린 아들이 가지고 온 색칠공부책 속 캐릭터를 관찰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구상해 케이크 위에 그림으로 옮겼던 그때가 떠오른다.


얼마 전 열두 살이 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 때 생일파티 때마다 엄마가 케이크 그려줬던 거 생각나? 어땠어?”

“너무 좋았지.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어. 애들이 너희 엄마 엄청 멋지다고 부럽다고 말했던 생각이 나.”

“정말? 그런데 넌 케이크를 늘 안 먹었잖아!.” 아들은 지금도 케이크를 잘 먹지 않는다.

“응 엄마! 그래도 나는 엄마가 케이크 위에 그림 그려준 게 멋져서 좋았고 친구들이 부러워해서 너무 뿌듯했어.”


‘아, 이게 바로 아이의 어깨가 뿜 뿜 올라간다는 그것일까.'

아이를 통해, 아이를 위해 만들던 케이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케이크를 만들게 된 것도, 케이크 위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모두 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즐겁고 설렌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더더욱.


아들 3살, 나의 첫 번째 캐릭터 케이크. 지금 보니 너무 어설프다.
그래도 이렇게 좋아했다니. 3살 아들^^
아들 4살 케이크. 스파이더맨 앉은 자세.
아들 4살 케이크. 스파이더맨 반신.
어린이집에서 4살 생일파티 때, 스파이더맨을 좋아했던 너.
친정에서 4살 생일파티 때
5살 아들 생일 케이크. 터닝 메카드 에반 로봇 버전
5살 생일파티 때
6살 생일파티 때. 이땐 내 공방에서 친구들 단체 베이킹 클래스와 파티를 해주었다.



KakaoTalk_20221027_004404755_02.jpg 7살 생일파티 케이크 , 대형 키즈카페에서 성대하게.. 케이크도 두 개
8살 생일파티 케이크 첫 번째.
8살 생일파티, 가베팀 친구들과
8살 생일 케이크 반 친구들과
8살 생일파티. 수영장 딸린 키즈카페에서 반 친구들과.
9살 생일 케이크


9살 생일파티. 친한 친구들 몇몇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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