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일터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상가계약,하트품은 러빙유 쿠키

by 글짓는슈


“엄마, 아빠랑 오늘 집에 계세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들를까 하는데.”

“무슨 일이야? 엄마 아빠 다 있지, 이른 점심으로 콩나물국밥 먹으러 가게 어서 와.”

최근 한 두 달 동안 혼자 전전긍긍 고민하느라 잠도 설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친정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혼자 그동안 고민했던 내용들을 정리해 엄마 아빠 앞에서 브리핑을 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베이킹하는 내 공간을 만드는 일에 관해 부모님과 의논하러 나서는 길이다.


매일 아침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발 빠르게 수업 준비를 하고 수강생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달달한 디저트를 굽는다. 수업을 마친 후 점심은 건너뛰고 설거지 뒷정리 후 다시 오후 수업 준비. 수업을 마치고 나면 늦은 오후, 부리나케 달려가 아들을 찾아온다. 가끔 세 타임 수업을 할 때도 있고 케이크나 쿠키를 구워 달라고 부탁하신 분들이 계시면 아들을 찾기 전, 혹은 찾아온 후에도 틈틈이 베이킹을 했다. 조금씩 일을 벌이고 있었지만 아이를 맡길 곳은 오로지 어린이집뿐이었고 가까이에 사는 가족도 없었기에 혼자 분주했고 바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즐거웠고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고 내 디저트를 인정받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달콤한 순간들로 채워가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에 아들은 어린이집을 무탈하게 잘 다녀주며 성장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답례품, 유아들 간식으로 인기가 많았던 쿠키가 있었다. 하트를 품은 귀여운 진저맨 모양의 러빙유 쿠키. 이름도 가족들과 상의해 지어냈다. 특히나 이 버터쿠키는 유독 자주 구웠고 아이도 잘 먹어주는 단골 메뉴였다.


이렇게 지내는 삶도 괜찮았지만, 점점 부엌에는 베이킹 살림이 늘어나고 집은 늘 버터 냄새로 가득했으며, 아들을 찾아온 이후 시간에도 수업 준비나 베이킹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혼자 조용히 레고 조립을 하고 있는 아들을 거실에 두고 슬며시 부엌에 가서 반죽을 하고 케이크를 굽고 쿠키 포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였다. 쿠키를 굽고 택배를 싸고 수시로 청소를 해도 집안에서는 늘 달달한 버터향이 배어있는 듯했다.


집안 살림과 일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는 중심이 필요했다. 내 공간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주문 문의가 많아서 근린시설을 갖춘 상가에서 제대로 허가를 받고 디저트를 팔고 싶기도 했다. 지역 인터넷 카페에서 집에서 파이를 만들어 파는 분이 가게를 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자신만의 공간을 하나 둘 오픈하는 분들을 보며 용기를 내게 되었다.


관련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서서히 내 공간을 어떻게 꾸며볼까, 어떻게 법적으로 허가를 내볼까, 구상하기 시작했다. 가족 중에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더군다나 요식업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수준이었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조력자인 남편과 대화를 할 때에는 그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어느 정도 수치적인 자료들이 필요했다. 지금 예산이 어느 정도 되고, 현재 수입은 이런데, 가게를 얻게 되면 지출은 이럴 테고, 보증금 월세 관리비 등등. 어느 정도 숫자에 능한 그를 설득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조사와 자료가 필요했다.


어느 날, 부동산에 연락해 가게 몇 개를 알아보고 맘에 들었던 한 곳을 사전답사까지 마쳐버렸다. 염두에 둔 공간이 혹시나 사라질까 좌불안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내가 집에서 홈 클래스를 하는 것도 취미가 좀 과해지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게를 오픈할 거라고 어필하려면 뒷받침해줄 힘이 필요했다. 그 힘은 ‘경제적 자립’. 그리고 ‘부모님의 승낙’이라고 나름 결론을 지었고 나는 그렇게 부모님과 내 공간에 관한 '힘'을 얻기 위해 중요한 상의를 하려고 시동을 걸었다.


뜨끈한 콩나물국밥을 앞에 두고 먹는 둥 마는 둥 부모님께 어렵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저 할 말이 있어요. 베이킹하는 공방, 가게를 하나 낼까 해요. 자리도 봐 두었고 보증금 월세 그리고 필요한 비용들도 산출해보았어요. “


늘 그렇듯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둘째 딸은 갑자기 부모님을 당황케 하는데 선수인 것 같다. 몇 년 전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결혼할 남자도 없었을 때, 모은 적금을 다 달라, 미국으로 MBA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말했다가 아빠에게 불호령이 떨어지고 혼이 났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침착하게 듣고 계시던 아빠의 표정이 심각하다. 엄마가 먼저 입을 여신다.


“엄마는 내 딸이 손에 평생 물 묻히는 일을 안 했음 하는데 네가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엄마는 찬이 걱정도 돼. 아이 보면서 가게 할 수 있겠니? 찬이 아빠는 뭐라 하니?”


“그래, 비용 산출은 했니. 어디 줘봐라. “


세무공무원 출신인 아빠는 숫자에 능하셔서 나는 미리 확실한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나름 준비한 자료들만으로는 아빠 성에 안 차는 눈치다. 엄마는 먼저 내 걱정을, 내 손끝에 물 마를 날이 없이 힘들 거라는 걱정을 해 주신다. 그리고 다음으로 사위와 손주 걱정을 하신다. 그렇다. 우리 엄마니까, 당신의 딸 걱정이 먼저였다. 뜨끈한 콩나물국밥에서 올라오는 김 때문일지, 나는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친정과 동떨어져 신혼살림을 차린 동네에서 혼자 복닥거리며 독박 육아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던 터라, 친정엄마의 돌봄과 도움, 말씀 한마디에 많은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보증금의 일부를 빌리기로 했으며, 남편에게는 “내가 몇 년 안에 투자한 돈 갚아 낼께”라고 소심하게 으름장을 내놓았고, 그렇게 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부동산에 가서 가게 월세 계약을 하게 되었다. 내 이름으로 된 상가계약서. 드디어 내 공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KakaoTalk_20221027_011407813.jpg 하트를 품은 러빙유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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