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

정신없이 바쁜 연말, 딸기 생크림 케이크

by 글짓는슈


크리스마스 시즌. 베이킹의 꽃, 겨울. 베이커리 업계의 특수 시즌이기도 하다. 1년 중 가장 매출이 극대화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윙윙윙’ 스탠드 믹서기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공방. 믹서기 안에서는 케이크 시트 ‘제누아즈’ 반죽을 만들기 위해 힘껏 부풀린 계란과 설탕 반죽이 넘실넘실 춤추듯 출렁이며 돌아간다. 풍성한 부피감이 생기면 재빨리 밀가루를 넣어 섞고, 녹인 버터를 넣고 부피감이 꺼지지 않게 잘 섞어 쫀득한 반죽을 완성한다. 유산지를 깐 원형 틀에 완성된 반죽을 또르르 부어 예열시킨 오븐에 넣고 구워 내는 케이크 시트 ‘제누아즈’.


이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머뭇거림이 없어야 하며, 빠르고 정확하게 몇 번의 주걱질로 재료들을 섞고 오븐에 넣는 것이 관건이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달달한 냄새와 함께 오븐 속에서 서서히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다 구워진 제누아즈는 뒤집었다가 다시 뒤집어 한 김 식히고 밀봉, 실온 숙성 후 커팅을 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보들보들한 스펀지 시트가 완성된다.


제누아즈도 구웠겠다. 이제, 생크림을 휘핑해볼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새하얗고 신선한 생크림. 처음에는 우유처럼 묽고 당도도 없지만, 설탕을 넣고 저속 혹은 중속으로 서서히 휘핑을 하면서 생크림 농도의 변화에 집중한다. 지방 함량이 35~6% 정도 되면 높은 편이라 ‘동물성 생크림’이라고 칭하는데, 이 생크림은 우리가 소위 아는 휘핑크림(식물성 생크림) 보다 더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나서 나는 베이킹을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줄곧 생크림 디저트는 이 크림만 사용하고 있다. 제누아즈에 시럽을 촉촉하게 적신 후 생크림을 듬뿍 올려 펼쳐주고 크림 속에 빈틈없이 딸기를 박아 넣고 매끈하게 생크림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해 매끈한 아이싱을 거쳐 완성해내는 딸기 가득한 생크림 케이크.


바로 이 케이크가 겨울 시즌,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의 단골 메뉴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이다. 베이킹의 꽃이라 하는 겨울, 그리고 봄까지 새빨갛고 새콤달콤한 딸기는 케이크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과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겨울 중 12월은 크리스마스 시즌 케이크 작업을 위해 베이커리 업종 사람들은 너무나 바쁜 시즌을 보내곤 한다. 사실 1년 내내 케이크를 먹을 특별한 이벤트들이 간간히 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작업이 몰리는 시즌은 10월 말 핼러윈부터 시작해 11월 11일 빼빼로데이. 그리고 이어서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행사용 디저트, 그리고 새해맞이, 밸런타인데이, 구정, 화이트데이 그리고 나면 5월 가정의 달 행사 등등. 이벤트가 있는 해당 월에는 시즌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것이 디저트 업계의 실상이다.


나 역시도 매년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미리 몇 주 전 크리스마스에 판매할 케이크 샘플 작업을 하고, 운영하고 있는 SNS에 내용을 업로드하며 케이크 사전 예약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세네 가지 디자인의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아이싱쿠키를 선보였다.


특히 케이크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라서, 겨울딸기와 신선한 생크림을 듬뿍 배합한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주 메뉴였다. 케이크 위에 다크 초콜릿 가나슈를 주르륵 뿌려준 후 새빨간 딸기를 듬뿍 올린 초코 주르륵 딸기 케이크도 준비했었고, 순우유 생크림을 보드란 케이크 시트에 돌돌 말아 가운데에 크림 가득한 스타일의 롤케이크를 만들고 그 위에 생크림과 딸기 가득히 장식을 하는 딸기 롤도 인기였다. 생크림을 샌드해 돌돌 말은 초코 시트에 다크 초콜릿 가나슈를 발라 통나무 무늬를 내고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롤케이크 ‘부쉬 드 노 엘’은 특별한 디자인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호하시는 분들에게 인기였다. 마지막으로 크림치즈 생크림으로 만드는 켜켜이 딸기를 듬뿍 쌓아 올린 딸기 타르트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건강하고 질 좋은 재료를 비싸더라도 아낌없이 넣고, 가장 맛있는 딸기와 신선한 생크림을 준비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었다.


처음 판매할 때에는 시중에 파는 대기업 케이크보다 다소 비싼 가격에 일부 고객들은 불만을 표한 적도 있었으나, 나는 어느 정도 선의 가격을 받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고급 재료들을 써서 만들 수가 없었고 최대한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처음엔 수제 케이크, 지방 함량이 높은 동물성 생크림에 대한 인식이 대중들에게 부족하기도 했고, 시중에 그런 케이크를 사 먹을 곳들이 잘 없어서 소비자들을 인지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공격적으로 가격을 어필하기 어려웠고, 그저 서서히 고객들의 반응을 보며 적정한 가격선을 절충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대중들도 동물성 생크림이 맛이 좋고 비싸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기에 이르렀기에 사람들은 돈을 좀 더 주고라도 맛있고 예쁜 케이크를 주문하려 한다. 이제는 비싸도 좋은 재료로 만들었고 맛있다 알려졌다면, 사람들은 밥값보다 더 비싼 디저트를 서슴없이 주문한다. 예전에 비하면 디저트에 관한 인식이 참 많이 변했다 싶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케이크를 주문하는 동네 지인들, 잘 알지 못하지만 SNS를 보고 주문하는 고객님들 덕분에 나의 공간은 동네에서 슬슬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대기업 빵집부터 수제 케이크를 하는 매장들이 점점 생기고 있었지만,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기에 위축되지 않았고 자신감을 갖고 내 일에 임했다. 사실 일과 육아를 혼자 해내느라 다른 곳들을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저, 내 스타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결국 나를 찾아오셨고 나는 그런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할 뿐이었다.


내가 공방을 운영할 때, 철칙이 있었다. 주문 예약제로 모든 디저트를 판매했기에, 신선도를 위해 고객님이 픽업을 원하는 날짜가 임박해서야 작업에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처럼 주문이 몰리는 시즌에는 무척이나 바빴다. 미리 몇 주 전부터 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년 12월 22,23,24일은 밤을 새우는 일이 당연했다. 낮에는 케이크 작업과 강의를, 밤에는 반죽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곤 했다.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공방을 왔다 갔다 하며 내 두 다리는 퉁퉁 부었고, 잠은 턱없이 부족했다.


12월 24일, 드디어 마지막 픽업 손님께 케이크를 보내면서 공방 정리를 하고 문을 닫는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오는 고요함이 이런 것 일까. 귓가에는 승전보가 울려 퍼지고,

“오늘, 너는 또 멋지게 해내었구나!”라며 누군가가 토닥이고 칭찬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늘 나는 혼자였지만, 맛있게 드셨다고 연락을 주시는 고객님들 덕분에 히죽히죽 웃으며 보람을 느끼고, 그래, 내가 이 맛 때문에 베이킹을 하는 거야! 하며 지친 심신을 달래며 자신감을 회복하곤 했었다.


폭풍 같은 크리스마스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25일. 대부분의 제과 업장들은 이 날까지 엄청난 작업물량을 견뎌가며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 며칠간 쉬는 업장들도 상당히 많다. 나 역시도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탄생 축하나 종교행사고 뭐고 할 것 없이 피곤에 찌들어 집에 널브러져 시간을 보냈던 나날들이었다. 이게 뭐지. 뭘까.. 남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며 공휴일을 즐기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아름답게 보내는 것만 같은데, 나는 퉁퉁 부은 다리와 졸음을 참을 수 없는 상태로 몽롱한 매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곤 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파티도 좋아하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그런 것들은 생각해볼 수도 없어 그저 그렇게 연말을 보내고 정신없는 심신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곤 했었다.


살짝 의기소침해졌던 것은,‘아! 이제 내가 베이킹하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는 계속 이런 삶을 살겠구나!.’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훌훌 털어버리고 나는 또다시 매년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내곤 했었다. 무려 12년 동안 말이다.


케이크 생크림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제노아즈 시트 위에 펴 발라 아이싱을 뚝딱 하고 다음 케이크 아이싱에 돌입하고 또 아이싱 하고. 빙빙 돌아가는 케이크 돌림판처럼, 마치 로봇처럼 분주히 일하고 있는 내 모습. 요즘도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단상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시즌, 발을 동동거리며 케이크를 만드느라 정신없던 시절의 ‘내’가 존재했다.


운영하던 베이킹 스튜디오를 마무리하던 그때도 추운 겨울, 12월 말이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 시즌 케이크 주문들을 받고 고객들 두 손에 안겨드리면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던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 사라지는 것을 겪어보니 뭐든 영원한 것은 없고, 타성에 젖은 현실을 깨부수는 것도 모두 ‘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바빴던 크리스마스 시즌의 추억, 몇 년 전부터는 강의만 하고 있어서 폭풍처럼 케이크를 만들어내던 과거는 아련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힘들었지만 보람되었던, 소중했던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 크리스마스도 바빴었다. 운영하던 공방은 없었지만, 외부 출강 수업들이 많았고, 딸기 값은 미친 듯이 폭등했던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싱한 딸기로 케이크 수업을 해야 했기에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싱싱한 딸기 수급에 열을 올렸다. 공방을 운영하던 때에도 마찬가지, 새벽시장에서 싱싱한 딸기를 가지고 오는 정직한 분이 운영하는 과일가게를 뚫어 믿고 받았었고, 생크림도 마찬가지였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여러 부자재, 재료 업체 사장님들을 컨텍하고, 그분들과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질 좋은 재료를 제때에 수급받는 길 중 하나였다. 이런 좋은 관계는 주문이 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빛을 발했다.


지금도 여전히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를 걷다가 만나는 크고 작은 빵집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시선은 지쳐있는 파티시에와 주방에 머문다. 그들이 얼마나 저 안에서 분주했을지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잘 모르는 그들에게 속으로 말한다.


“당신, 요 며칠 수고했어요.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세요.”라고 말이다.

동병상련.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그런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덥고 추운 와중 열심히 오븐 앞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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