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더라.

베이킹 스튜디오의 끝, 부쉬 드 노엘 케이크

by 글짓는슈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법정스님


나의 베이킹 스튜디오는 그럭저럭 잘 운영되고 있었다.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네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도 찾아오시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수강생들과 주문제작 의뢰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늘 바빴고 일과 육아 살림의 중간을 찾아가며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 하고 있었고 멈추지 않고 있음에 의의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남편이 갑자기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옮길 회사는 차로 2시간 반 거리인 지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집 근처에 기차역이 있기에 비교적 편하게 출퇴근이 가능하다 하여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며 한 달간 왕복 도어 투 도어로 5시간이 소요되는 출퇴근을 하며 살이 4킬로가 쪽 빠졌다. 길에서 쓰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야근이 있거나 이른 출근을 해야 할 경우가 문제였다. 그는 무척 힘들어 보였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회사 근처에 살 집을 알아봐야겠어.”


주말에 회사가 있는 동네에 가보았고 그가 살 집을 알아보고 전세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예 가족이 살 집을 지방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 점에 있어서 우린 둘 다 비관적이었다. 좀 더 변두리로 간다면 살던 집보다 더 넓고 쾌적한 새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지만 그런 삶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주말부부가 된 바, 내가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 12년간 살아왔던 이 동네에서 과감히 친정 근처로 이사를 하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친정 부모님 비롯 언니 동생이 모두 살고 있다는 점이 컸다. 물론 나로서는 운영하던 베이킹 스튜디오를 접어야 하는 큰 문제가 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의 학교 문제도 있었고, 여러모로 고민해본 바 친정 근처로 이사를 결심했고,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사를 해도 그의 회사는 차로 한 시간 반 거리라서 어차피 주말부부는 불가피했다. 차이나는 집값으로 인해 한 두 차례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사날짜가 정해졌다.


베이킹 스튜디오를 문 닫을 준비를 하고, SNS에 공지를 하고 지인들에게 알렸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들 적잖게 당황했고 아쉬워해 주었다. 그렇게 서서히 정리를 하면서 마지막 겨울이 왔고,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을 바쁘게 마무리한 후 며칠 있다가 운영하던 베이킹 스튜디오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12월 24일 마지막 픽업 케이크인 '부쉬 드 노엘'까지 모두 전달이 완료되고 나서야 현실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작업하던 날. 처음 설레었던 시간들이 뒤섞여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삿날, 스튜디오 짐을 빼고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부동산에 열쇠를 건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가게 오픈을 마음먹었던 때부터 해서 가족들을 설득할 때의 순간들,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워 작업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퉁퉁 부은 다리로 반 뛰어다니면서 해내고야 말겠다 다짐하며 일에 미쳐 있던 시간들 말이다. 그땐 몰랐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이 순간도 쭉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 한 때인 것도 말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나의 경험과 추억이라는 것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겪어 봐서 깨달았고, 막상 그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사와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팬더믹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내 공간이 사라져 버리니 공허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에 빠져 지냈던 시간들을 보냈었다.

하루빨리 새로운 동네에서 이전처럼 스튜디오를 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지 않았고, 팬더믹 때문에 학교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는 아들도 걱정이었다.

당장 공방을 낼 수 없는 이유 중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들의 의견도 중요해서 물어보았다.


“아들, 엄마가 예전처럼 베이킹 스튜디오를 다시 시작하면 어떨 거 같아? “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엄마 생각이 중요하잖아요.”

“엄마는 하고 싶기도 한데 너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줄 거 같아서 걱정도 되고, 아들의 의견이 궁금해.”

“그러면 나는 엄마가 너무 바쁘고 힘든 게 싫어요, 가게 안 하고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아들의 어린 시절, 공방에서 견뎌냈던 시간들이 혹시나 엄마의 눈치를 보며 인내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 어렸던 아들이 매사 잘 적응해줘서 고마웠지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것은 사실이었다.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가도 어긋나기도 하고 또 갑자기 속도를 내기도 한다. 내가 베이킹을 하는 삶을 선택했던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약 13년 동안 갈고닦았던 많은 시간들과 이를 이해해 준 가족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늘 일하는 엄마로 버둥대던 모자란 엄마라 미안했는데, 그래도 아들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고 자아를 찾고 싶었어. 적어도 그때는.”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나의 첫 사업자 공간이었던 베이킹 스튜디오는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한 것은 없었고,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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