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문화센터 전문강사로의 발돋움, 쿠키슈

by 글짓는슈



한입 베어 물면 얇고 바삭한 과자 속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한 슈. 슈 속에 꽉 들어찬 디플로매트 크림은 또 어떻고. 부드럽게 휘핑한 생크림과 커스터드 크림을 섞어 만든 디플로매트 크림이 들어가야 진정한 슈크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게다가 크림 속에 까만 점이 콕콕 보이는 바닐라빈이 들어갔다면 은은한 바닐라향과 함께 제대로 만든 슈를 즐길 수 있겠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베이커리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슈와 스콘이다. 특히 슈 겉면에 소보로처럼 오돌토돌 쿠키 반죽을 감싸서 구워낸 쿠키슈라면 금상첨화. 슈는 만드는 공정은 일반 쿠키들과는 조금 다르다. 슈 반죽을 만드는 공정 중에는 반죽을 냄비에 넣고 불에 볶는 과정이 들어가는데 갑자기 슈가 먹고 싶을 때, 그때그때 만들어 먹자니 복잡한 공정이 귀찮아서 좋아하면서도 선뜻 작업할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런 베이커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크림은 또 어떻고. 생크림 휘핑은 별거 아니라 하더라도 노랗고 쫀득한 커스터드 크림을 끓여내는 것도 시판 크림 믹스를 쓰지 않고 직접 계란 노른자와 우유, 설탕을 냄비에 넣고 끓여 한 김 식힌 후 가루 재료를 넣고 재빠르게 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저어줘야 하는데 이 공정 자체도 복잡하다면 복잡할 수 있고. 아무튼 이렇게 복잡한 공정들을 마치고 구워진 쿠키슈 껍질에 크림을 가득 채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행복이란. 해보지 않았으면 모르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그런 것.

그런데 또 막상 한 번씩 빵집에 들러 쿠키슈를 찾으면 내 취향의 슈가 잘 없기도 하고, 속에 들어가는 크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내가 만들어 먹지 하다가 공정을 생각하자면 복잡해 미루다가 결국 안 먹음 되지 뭐 이런 포기하게 되는 상황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배제하고서라도 완성된 슈에 크림을 채울 때의 희열. 한 입 베어 먹었을 때의 그 설렘과 달콤함을 기억한다면 다시금 만들어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마음먹기가 어렵지, 시작하면 고되더라도 결국 탄생하는 쿠키슈처럼 생각지도 않은 상황들이 닥쳐서야 비로소 그동안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복잡할 것 같아 힘들 것 같아 귀찮을 것 같아서 시도해보기를 꺼려했던 것에 대해,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나는 그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팬더믹.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인 혼란의 시기. 도대체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언제쯤 전쟁이 끝나고 물가가 안정화될까. 지난 2년 반 동안 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고 이보다 더 최악의 상황들이 있을까 싶은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나 역시도 운영하던 베이킹 스튜디오를 접고 멀리 이사를 했기 때문에, 가볍게 ‘한 두세 달만 쉬고 다시 공방을 차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새로운 콘셉트의 나의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까, 공간은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생각은 늘 가득했고, 뇌는 늘 쉬지 않았다.

나는 늘 현실 가능성이 있는, 이룰 수 있을 만한 너무 높지 않은 목표를 세우는 편이다. 멈추어 있는 삶이 싫었고 여유롭게 쉬는 삶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목표를 잡는 것을 좋아하는데, 왠지 이번에 다시 공방을 열면 해보려고 했던 아이디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져만 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급하게 변한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들에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베이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유일하게 끌고 온 외부 강의가 있었다. 일요일에 성인과 키즈 두 타임을 수업하는 한 대형 쇼핑몰 문화센터 베이킹 수업이었다. 차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지만, 주말 하루니까 이 수업만큼은 유지한 채,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어떨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렇게 매주 일요일마다 강의를 다녔다. 원래 이사하기 전부터 다녔던 일요일 강의였었다. 일요일마다 홀로 아들을 케어하는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남들 놀 때 일을 해야 하니 속이 쓰리기도 했지만, 한 강사에게 하루 두타임 강의를 부여해주는 아주 호의적인 대우였기에 마다할 수 없었다. 이사를 와서 거리가 멀어졌어도 꾸역꾸역 일요일에는 바람 쐬러 간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다녔다. 나의 일요일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만 갔다. 무려 6년 동안 말이다. 최근에 그쪽 문화센터 철수로 인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일요일 강의는 끝이 나긴 했지만..


처음에는 이사 온 동네에서 새롭게 강의처를 뚫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내 공간을 새로 낼 것인데, 외부 출강을 잡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방 자리를 선택하는 문제, 바뀐 동네로 인한 월세의 차이 등 현실적인 문제들과, 무엇보다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창업을 하는 것은 불지옥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점점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팬더믹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방학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뿐인 아들은 전학 온 새 학교에 등교도 못하고 친구도 못 사귀고 어설픈 온라인 수업만 하고 있다 보니 서로 지쳐만 갔다. 아이도 나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고 일방적으로 내가 아이에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생각한 방향대로 나의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의 기복도 심해지고 전전긍긍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일을 적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 경제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던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출강 중인 문화센터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선생님 이사 가신 동네 근처 백화점 지점 문화센터에서 베이킹 강사가 필요하다는데 선생님 추천했는데 어떠세요?”

“아, 정말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연결해주시면 고려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새로운 강의처라.. 아! 시도해볼까? 생각만 하고 있던 외부강의, 바로 그거다!’


나는 내 공간을 만들 생각만 했지, 이사 온 동네에서 기존하던 강의처 이외에 새로운 강의처를 뚫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다년간 베이킹 강사로 활동해 온 지라, 어느 정도 지역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사 온 새로운 동네에서는 막상 공간을 차려도 나를 알려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누구보다도 맛이나 재료에 대해 자신 있는 나의 베이킹 실력을 이쪽 동네에서 어필하려면 모든 것을 리셋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홍보를 해야 할 테다.


‘그래, 그렇다면 이쪽 동네에서 외부강의를 통해 나의 입지를 굳히고 서서히 내 공간을 오픈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을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추천해주신 강의 출강을 계획하면서 이를 시작으로 인근 백화점이나 쇼핑몰, 마트 문화센터들을 리스트 업해서 조심스럽게 이력서를 보내 보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작성해보는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는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알려주듯 화려한 경력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베이킹하는 일을 선택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대단한 경력까진 아니더라도 꽤나 꾸준히 활동을 한 흔적들이 내 이력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거다! 갑자기 사라졌던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 메일을 보내며 컨텍을 시도했다. 며칠 후 슬슬 담당자들로부터 출강 의뢰 연락을 받게 되었고, 인근 쇼핑몰 문화센터들 몇 군데로, 출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문화센터 경력이 경력을 낳고, 인맥이 인맥을 낳는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되면서 출강처가 늘어만 갔다. 성심성의껏 그동안 갈고닦은 레시피와 수업 노하우로 성실히 강의를 진행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새로운 동네에서 팬더믹으로 인한 불경기 상황을 꿋꿋이 이겨내어 가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문화센터 베이킹 강사로서의 새로운 시작. 소위 말하는 보따리 강사라 할 수 있는 ‘문화센터 베이킹 강사’로써의 커리어가 한층 한층 쌓이기 시작했다. 출강 전문 베이킹 강사. 그 시작도 끝도 모른 채, 당장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내 입지를 구축하기 바빴다.

이사 온 동네에서도 ‘나’란 존재를 알리고 싶었고,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나가 소통하고 싶었다. 열심히 강사 활동을 하는 내 모습을 꾸준히 관리하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문화센터 전문 베이킹 강사로써의 입지를 다져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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