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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r 07. 2023

떠나고 싶다. 여행병 환자의 넋두리

상상만 해도 즐거운 여행, 즐거울 락!


해서 즐거운 일, 그걸 해야 하는데. 즐거운 감정 그 자체를 잃어가면 안 되는데 말이야.


했더니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나에게 잘 맞아서 오랫동안 하고 있는 취미일 수도 있을 테고,

그 행위들이 쌓이고 쌓여 일이 되고 경력이 되어 나를 정신적 경제적으로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 있기도 할 테고. 처음 시작할 때처럼 즐거운 감정이 쭉 계속되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삶에 찌들어서 에너지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닌데, 생각보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불안하고 슬프고 괴로운 상황들을 훌훌 떨쳐내기가 나이를 먹을수록 쉽지 않다고 요즘 들어 느끼고 있거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던 시간들이 있었다. 소중한 하루를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면서 소중한 나의 오늘에 감사하고 주위에 나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시간들 말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 카메라에는 사진 한 장도 없는 날들이 늘어나고, 자꾸 노력한 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시간들이 쌓여 하루를 채우고 눈물을 쏟아내는 시간들이 다반사인 이런 시간들은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이렇게 지내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또 쌓인 게 있을 것이고 나는 그만큼 능력치가 상승해 있을 테다. 지난 시간들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발전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따금씩 서러워지기도 하고. 슬퍼지는 그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이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해져야 하는데. 복잡할수록 돌아가라고. 그러면, 좋아하는,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을 상기시켜 보는 거다.


아들이 가끔 묻는다.


"엄마, 엄마 생일 선물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엄마는 뭐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


그런 질문들이 훅하고 들어올 때마다 대답은 고민 없이 단 하나다.


"여행. 엄마는 생일선물로 여행을 가고 싶어.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들로.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고 추억을 남기는 시간들이 좋아. 행복하고 즐거워. 안 가본 나라가 너무도 많아. 죽기 전까지 다 가보고 싶어."


여행, 해서 즐거운 일.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요즘  팬더믹이 한풀 꺾이고 너도나도 비행기를 타고 가깝고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제자리걸음 중이라니.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고 숙소를 서칭하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바쁘게 살다가 날짜가 임박해 떠나버리는 그런 자유여행도 괜찮은데 말이다. 시간을 내기가 왜 이리 힘든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이따금씩 여행병이 도지면 괜히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항공편 서칭을 한다. 가지도 못할 거면서 팬더믹 이후 하늘길이 어디까지 열렸나 검색하는 몇 달 사이 모두 활짝 열려버렸다. 달력을 보고 남들 다가는 성수기 주말밖에 못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허탈해져버리고 만다. 비싼 비행기값을 내고 짧은 2박, 3박짜리 여행하겠다고 굳이 멀리 나가서 하루종일 힘들게 돌아다니고 다시 돌아올 여행. 예전에는 이렇게라도 나는 충분히 괜찮았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체력이 달릴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인지. 남편과 나, 아이의 시간을 모두 충족시킬만한 여행일정이 전혀 나오지 않음을 알고 나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항공권사이트를 닫는다.


그런데 항공편을 서칭 하는 동안, 마음은 이미 그 나라에 가 있다. 상상 속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나라 공항에 내려 현지 음식을 먹고 문화를 흡수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상상을 한다. 때론 길을 헤매기도 하고, 그 덕분에 의외의 공간을 만나기도 하며, 남들이 가지 않는 좁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걷고, 맛집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느낌대로 찾아간 식당과 카페에서 의외의 발견을 하는 느린 여행말이다.


요즘은 tvn에서 하는 '서진이네'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면 낙이랄까.

윤식당에서 시작해서 '서진이네'로. 멕시코에서 배우들이 식당을 운영하는데, 새 멤버인 bts 뷔가 나온다 하여 재미가 더해질 듯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은 나 같은 해외여행 동경자에게는 딱 좋다. 현지살이는 아니면서 잠깐의 여행인데,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무언가 문화적 교류를 만들어가는 것, 음식과 문화를 교류하는 그런 상황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약간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분주한 주방의 모습과 동선들은 한때 바쁘게 움직였던 내 베이킹 작업실을 추억하게 만든다.


'내가 주방에 뛰어들면 박서준배우 못지않게 멀티풀 하게 일을 해낼 텐데. 정유미 배우의 김밥 마는 모습을 보며 한 번에 김밥을 20줄도 후딱 싸는 내 휘리릭 손이 저기에 가 있어야 하는데.'


홀로 상상하면서 말이다.


티브이도 잘 보지 않는 내가 '서진이네'를 보기 위해 본방을 못 보면 재방을 보겠다고 편성표를 찾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그냥 그 시간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고 집중. 깔깔깔 웃기도 하고 배시시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식당이라는 매개체로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한국 음식들을 먹고 소개하는 모습들이 즐거워 보인다. 혼자 여행 와서 각각 테이블에 앉아서 다른 테이블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자유로움도 좋아 보인다.

안다. 장사도 잠깐이고, 방송이니 할만해 보이겠지. 사실 현실은, 장사 잘되는 요식업장의 주방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도 잘 알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도 어느 정도 알면서도 그저 이상만을 쫓아 현실을 간과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티브이채널을 돌리다 보면 프로그램 이름조차 기억을 못 할 정도로 다양한 여행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있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현재를 사는구나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훌훌 떠날 용기도 없는 내가 문득 초라해진다. 저기 가서 저걸 하고 싶네, 저길 가야지 하며 보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와 쓸쓸해지기가 다반사.


해외출장을 다닐 수 있는 일을 대학 졸업 후 선택했었는데, 그때의 누렸던 시간들이 문득 그리워지고 한편, 그 일을 계속했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도 상념에 잠긴다. 그런데 왠지 그렇게 계속했으면 내 곁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손으로 직접 키워낸 '지금의 아들'이 없었을 것 같아서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보다 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내가 살짝 아쉬울 뿐. 현실에 순응하기로 결정한 내가 있기에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약간의 위안은 된다. 누구나 이상대로 살 수는 없지 않나 싶고.


요즘 폴란드에 장기 출장을 가있는 남편으로부터 주말마다 도심 안팎을 여행하면서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며 부러움을 보내며 내심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도 못 가본 나라의 풍광이 궁금하고 음식이 궁금하고 거리의 모습들과 사람이 궁금해 자꾸 물어본다. 거기 커피는 어때? 음식은? 공항에 내렸을 때 냄새는 어때?(이런 건 왜 궁금한지.)

그런데 결론은 나도 가고 싶다는 넋두리. 또다시 현실.

"여보 같이 가자.. 다음에 꼭.."


나의 즐거움은 여행이다.

여행병환자의 소심한 넋두리.

'선택은 네가 했어. 나 지금 되게 신나.'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글로리' 대사 일부를 읊조리면서...


 '나는 신난다. 신난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떠날 날이 오겠지.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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