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욱더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도전은 불가피하다 생각했고, 악착같이 해내려고 노력했었다.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내 한계치만큼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했고, 후회는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 실망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나는 잘해왔고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자기 암시를 잘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시간낭비만큼은 하지 않았고, 경험을 쌓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며 아쉬운 감정들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랬다.
나는 한때, 욕심부자였다. 욕망덩어리. 뭐든 잘하고 싶고 갖고 싶었던.
세 자매 중 가장 욕심이 많은 둘째 딸. 그게 딱 나였다.
초등학생 때였나.
아빠는 세 딸을 위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퇴근길에 마론인형 3개를 사 오셨다.
그중 두 개는 박스가 작았고 똑같은 진한 갈색 생머리에 디자인만 다른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인형인 반면, 한 박스는 그에 비해 컸고 반짝이는 긴 드레스를 입고 웨이브 머리가 찰랑거리는 공주님 인형이었다.
자연스레 큰 박스는 언니에게 전해졌고 나와 동생이 작은 박스 인형을 받았다. 동생은 당시에 어렸기에 크게 의미가 없었겠지만 욕심 많은 나는 그렇지 않았다.
저 큰 박스의 공주님 인형을 갖겠다고, 왜 언니만 좋은 걸 주냐며 내가 저 공주인형을 갖겠다고 부모님께 토를 달기 시작했다.
즐거울 법한 크리스마스이브, 평소 화 한번 안 내시는 아빠는 내게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고야 마셨다. 나는 그때 처음 아빠도 이렇게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아끼는 다른 인형을 갖다 버리라고 하셨고, 나는 엉엉 울며 그 인형도 저 인형도 갖겠다고 난리를 피웠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언니만 더 화려하고 예쁜 인형을 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호되게 아빠에게 혼나고 난 다음날,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보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전날 나의 떼부림을 신부님이 아시는 것만 같아서 괜스레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피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좋은 것을 갖고 싶었을 뿐인데, 그놈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난리를 피웠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마음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건 이후로 엄마는 내가 여러모로 세 딸들 중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셨다.
사실 인정한다. 커가면서 나는 세 자매 중 가장 욕심이 많은 딸이었다. 나는 뭐든지 잘하고 싶었고 잘하려고 노력했다. 늘 적극적으로, 얻어내고 싶은 것은 얻어내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 기준에서 내가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챙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손해는 절대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나는 그야말로 ‘욕심덩어리’였다.
그렇게 살던 사람은,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고 환경이 변하고 다양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점차 변해갔다.
욕심을 부려 무언가를 얻고 나면 잃는 것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만사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음도 알게 되었다.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누군가가 판단할 때에는 아직도 욕심을 못 내려놓고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견뎌내기 힘들고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버텨낼 수 있는 힘도 길러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 그래서, 네가 욕심이 없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맞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나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욕심이 넘쳐나서 다 하지도 못할 것들을 벌려 놓고 뭐 하나 제대로 못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챙기고 살지도 못하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지금도 사실 내려놓지 못하는 그 ‘욕심, 욕망’ 때문에 나를 힘들게 만드는 상황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적어도 예전처럼,
'무조건 나는 다 잘해야만 해, 모든 사람들이 날 좋아해야 해. 긍정적인 평가만 받고 싶어!'라는 생각을 접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너무 알아버려서라고 할지. 세상만사에 찌들어서라고 해야 할지.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쌓인 내공이라고 해야 할지.
당연한 건데 이제야 깨달은 것일지.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인 것일지..
씁쓸하지만 괜찮다. 이렇게 또 성장하고 있는 거니까. 배우고 성장하고 그러는 게 인생이니까.
그래서 더 나이 먹는 것이 기대가 되고 즐겁다.
몸이 여기저기 아파지는 것만 빼면 말이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써보았고 이제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