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낙 추위에 약해 겨울이 무섭다. 흰 눈이 쌓인 산자락은 구경만으로도 눈이 시리고 동물 털로 몸을 휘감아도 입술이 파래지며 머리까지 찬기운을 덧대어 스친 우단 커튼 같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도 채 오기 전에 봄 꿈을 꾸는 적이 종종 있다. 꿈속에선 먼산에 아지랑이를 잡으려 뛰어다니다 이상하게 꼭 넘어진다.
창문에 그리운 버스 속에서 보았던 그, 남학생을 그리고 누가 볼세라 손바닥으로 얼른 지우고 다시 입김으로 채워놓는다. 몸으로 느끼는 한기의 추위도 한 몫하지만 마음 한 귀퉁이에 스산한 , 정신적 추위는 나를 더욱 못 견디게 한다.
연탄 불구멍을 활짝 열어두어도, 동생과 우격다짐으로 아랫목을 차지하고 배를 깔고 소설책을 읽어도 한대 바람은 나의 온몸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갈래 머리를 끊고 양쪽 골을 타 굵직한 파마를 했다. 거울 속에 앉은 나는 멋진 <아랑 드롱>의 상대를 견줄 여배우가 되고 눈썹을 한 없이 크게 보이려 숯검댕칠을 해 놓았다. 신기한 얼굴이 되니 세월의 강도 넘실거리며 점차 어른이 되어 시간을 넘고 늙어가고 맘보자기도 넉넉해졌다.
추운 겨울에 길목을 더듬는다. 홀홀한 바람을 타고 고독한 나비가 되어본다.
아! 내가 오늘까지 이루어 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이 난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나는 벌써 오월의 태양이 쏟아지는 벌판을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