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불고기

by 여비

나는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퇴근시간에 지글거리는 불판 앞에 앉아있다. 둥그런 깡통 철판엔 스텐 양푼이 두 개가 쌍둥이가 머리를 맞대듯이 올려져 있다. 슬라이스가 일정한 간격으로 절인 간장 옷을 입고 당면, 양파, 대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버섯도 흰 물방울처럼 스팡크쳐 있다.

아버지 생신날, 고모부가 철강회사에서 주임으로 승진한 날에 먹어본 옛날 불고기는 내 어릴 적 먹거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리였다. 부엌에선 순이 언니가 쵸코렛 빛의 고기 뭉치와 씨름을 한다. 함지박의 담겨있는 불고기를 눈으로만 훔쳐보아도 "나가 놀아라. 어른들 상차림에 기웃되면 못쓴다!..." 할머니의 거친 음성이 내 귀를 때린다. 이상하다... 나는 매일 저녁시간도 잊은 채 동네 오빠들과 쏘댕 기며 놀고 인수네 큰언니 화장품 그릇도 뚜껑 열고 요리조리 돌리고 하며 한 밤중에나 집으로 기어드는데, 잔칫날만큼은 나가서 놀 때도 없고 집안을 빙빙 돌며 눈치꾸러기로 돼버린다. 한 댓 잠을 자는 덕구를 할일없이 치근대고, 부엌 틈 방을 들락댄다. 수돗물을 틀어도 보고 다시 잠그고 간장통을 들어서 손으로 흔들고는 막판엔 할머니만의 찬장에 우아하게 앉아있는 참기름을 꺼냈다.

어른들의 상엔 갖은 나물, 산적꼬치, 닭고기 냉채, 그리고 옛날 불고기...

상다리가 휘어질 것만 같다. 고모부가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노란 결재 봉투는 주임으로 승진한 그날도 할머니 자개 장경 대위에 올려져 있고 고모가 들고 있는 비루 잔은 홍수환 권투선수가 하늘로 치켜든 챔피언 트로피였다. 고공을 박차고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나를 더욱 조그만, 얼띠기애로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그란 원안에 깨끔발을 하고 들어가지 못해 땅을 헛발짓하는 내가 싫었다. 마당을 뛰어 나가 칠이 벗겨진 파란 대문을 힘껏 발로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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