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지우고

by 여비

분 냄새를 품기는 선생님이 좋았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장미꽃 향기가 나풀댔다. 환하게 웃는 웃음 속엔 숙제도 적게 내줄 것 같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엄마의 말뚝, 1의 신여성"이 된 것일까?... 선생님은?

학교를 파하면 곧장 집으로 가야 되고, 어두운 밤길엔 나설 생각 하면 안 되지요.

부모님의 허락 없이 친구 집에 놀러 가서는 안되고, 시장통에 들어온 약장수 구경은 더욱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의 설교는 하늘의 뜻이라 받았다. 내가 감히 사촌오빠의 사각모를 쓸 수 없는 거고 아버지 밥상에 놓인 굴비엔 코끝도 대어선 안되었다.

여자애가 어디서 나대느냐? 묻지 않는 엄마 얘기는 하지도 말아라. 친척들 오시면 댓돌 위에 신발정리는 여자가 하는 거다....

할머니의 잔소리다!

여고 졸업도 하기 전에 화장을 했다. 직장의 언니들은 모두 화장을 하고 목엔 핑크빛의 스카프를 두르고 카드를 공장장 아저씨께 내민다. 멋스럽고 세련이 줄줄 떨어지는 비주얼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눈가에 얹어놓은 밤색의 펄이 도드라지게 발라대고 꽃분홍의 연지를 문대고 비닐구두를 신고 따라다녔다. 종종 대는 두 다리는 타자기의 또각 거림과 맞물려 털털대어도 일자리를 떨려 내지 않으려는 옹글진 맘만큼은 다부지기가 하늘 같았다.

미뤄둔 공부를 생각하면 내가 일을 놓을 순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니깐...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누구에게나 빛나지만 내게 비추인 별빛만은 영롱하게 나만을 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내 친구인 별에게 눈물을 보여도, 휴학 중인 학생증을 꺼내어 별빛에 비추면 힘이 생겼다.

화장을 지우고 옆구리에 책들을 끼고 다시 학생이 되었다. 직장을 다닐 때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었다. 여자여서 나서지 말라는, 굴비가 올라온 밥상에 코끝도 스치지 말라던 할머니의 잔소리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왜! 시장통에 약장수 구경을 안되는데...

늦게 시작한 공부에 어눌한 생각을 보태 띄엄띄엄 졸업을 하던 날에 내 입술엔 분홍빛 연지가 발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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