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ㅇㅇ포 사거리를 건너 우측으로 500여 미터를 걸어 영화 포스터를 마주하면 즐겁다. 중간고사를 어설피 끝내고 덜그럭 거리는 필통 소리에 발을 맞춘다. 달달 외운 족집게 문제를 맞히지 못했어도 팔뚝에 찍힌 도장을 바라보면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도 설핏 선잠을 깨워도 마냥 신이 났었고 선도부 선배 언니의 코 투리도 튀밥 튀기는 소리처럼 경쾌하기만 하다.
빼곡히 적힌 영화 이야기는 누구의 사랑노래보다 더욱 소중했다. 그 당시 영화평론가 '정영일 선생님'은 나의 우상이었다. 주말의 명화를 기다리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여중생이었다.
<벤허>가 우리 동네에 상륙했다. 어렵사리 구한 영화표 두 장을 보고 또 보았다.
시네마스코프, 노란 바탕화면에 말 경주차가 달린다. 윌리암 와일러 감독 그리고 찰톤 해스톤의 명배우가 말채찍을 휘두르는 장면이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말 경주차의 톱니바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가 뒤로 점점이 사라지며 멧살라의 채찍에 맞은 말마차가 나뒹굴며 얼굴에 피범벅이 되는 주인공 유다 벤허... 화면 속에 달려 나오는 말경주차엔 나의 안타까움을 싣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갑옷으로 휘 감은 군, 사령관의 가죽 샌들, 한 때 다운 타운 뒷골목엔 그때의 통가죽 샌들을 맞추어 신기도 했다.
70밀리 대형 스크린은 당시 35밀리가 주류를 이뤘을 그, 전엔 획기적이고 신문명이었다. 크기에서 나를 압도하며 화려한 영상미는 덤이었다.
씨지브이 6관에 막내 고모와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나왔다. 화려한 조명, 객석의 빼곡한 네모칸이 마음을 덥게 한다.
80의 강건함에, 우리가 한 원이 됨에 숙연하기까지 하다. 영화 이야기로 꽃처럼 해맑은 나의 사랑은 상영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풍성한 잔치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