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울었다. 단축번호 1번인 예민녀 큰딸이다. 며칠 전 결혼기념일에 그냥 넘어가 미안하고 알아둔 맛집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통화였다.
그날, 큰딸과는 첫 데이트였다. 나는 평생 일하느라 바쁘고 딸애는 노느라 바빠서 밖에서 따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꼭 바빠서만도 아니었다. 나는 휴일이어도 집안일과 늦은 공부로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조용한 사람이고 딸애도 자기 거처에서 사느라고 그랬다.
딸애가 맛집이라 해 간 곳은 ***순댓국 전문점이었다. "엄마 순대가 푸짐하고 돼지고기는 살점이 크고 탱글 해. 다진 양념 간도 얼큰하고 칼칼해. 그중 국물 맛이 진하면서 깔끔한데 꼭 엄마가 해주는 소고기 미역국 맛이 나더라고" 하며 얼씨구 권한다. 곁들여 '참이슬 빨간 거"도 잊지 않았다. 딸애와 마주 앉아 술국에 소주를 마시고 있으니 주책맞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올라온다. 그놈의 술 때문에 망가져 버린 아버지 인생이다. 정신줄 놓고 퍼 마신 술로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먼 친척에게 속아 넘어가 집문서에 도장도 찍어주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 사업 보증도 서 주었다. 폭망한 집안의 장녀인 내게 고단한 삶을 던져 준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큰애와의 순댓국 데이트에 머리를 잡아당기는지...
진하게 우려낸 말간 국물을 한 술 떠 입으로 가져간다. 울컥울컥 아버지 생각에 명치가 뜨겁다.
입가심으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만큼 커서 순댓국을 마주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딸애가 그저 고맙다. 초로의 내가 초광속으로 달려가는 세상을 마주하듯 그렇게 흐르는 강물은 흘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