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잘 숨는 아이였다.
구멍 뚫린 하늘에선 굵은 빗 줄기가 쏟아진다. 이런 날은 뒤뜰과 이어진 대나무 숲이 우거진 텃밭을 돌아 고랑을 이어놓은 뒷방에 숨어든다. 온 집이 적적하고 학교도 방학이라 놀 친구도 없고 놀이를 삼아 놀거리도 없고 젖은 앞마당만 쳐다본다. "심심해 심심하다" 연거푸 소리를 지르면 시간이 마구 도망가 버린다.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려봤다, 쫄쫄이 바지처럼 줄여도 보고 시간으로 줄넘기도 한다.
머릿속으론 "생각 탑"을 쌓았다 허물었다. 발걸음을 크게 벌렸다 잦게 놓았다 멀리도 갈 수도 있었다.
내가 잊어버렸던 엄마 얼굴도 찾아보고 아님 죽여 버렸다가 죽기 전에 잊을 수 있었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코울 필드>를 좋아한다.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사색을 하고 싶고, 잔꾀를 부리는 어른들을 싫어하고 간단하고 심플한 일상이 좋고 특히나 글쓰기를 좋아해 몰입함에 희락을 삼으며, <홀든 코울 필드>처럼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침잠하며 조용히 은둔자로 가는 중이다. 혼자인 나로 살기가 편해 보고 싶은 공연이나 영화가 있을 때는 혼자 간다. 동굴에 숨어 온전히 예술을 먹기 위해. 책을 혼자 읽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