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by 여비

새벽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버릇처럼 텀블러에 맑은 숭늉 물을 채우고 입을 닫아 비닐가방에 넣었다. 두 손 모아 어젯밤 꿈들을 정성스레 정리하고 하루의 아침을 맞는다.

오전에 처리할 일들을 순서대로 "행동일지"에 적는다. 읽다만 책을 책상 위에 얹어놓고 창가에 나앉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는다.

건강과 시간의 늘어짐을 위해 탁구 배우기 취미반에 가입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거의 숨쉬기를 하고 무료하다 싶으면 산책을 하는 정도다. 내가 탁구를 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탁구 라켓을 휘두르며 거울을 한 번식 쳐다보는 내 눈은 무척 고무적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코치 선생의 활기찬 구령은 저절로 체력이 생길 것만 같다. 스매싱 드라이브 언더컷 스윙하는 생소한 단어들이 머리 위에서 회오리친다. 한 컷을 받아 올릴 때의 기분이란 마치 내가 현정화가 리분희 북한 탁구선수와의 결전을 했던 그날 '화팅'이라 외치며 주먹을 당차게 쥐는 장면 같다. 헉 헉대며 숨을 몰아쉬고 흐르는 땀을 닦는 내가 왠지 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붕 떠있어 콧노래가 나온다.

오후에 스터디 모임은 가지 못했다. 게으름으로 읽지 않은 교재와 나눌 이야깃거리에 자신이 없어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쓰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번번이 느끼는 자신감 부재로 힘이 빠진다. 굳이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몹쓸 부족한 머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기분이 더럽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변수로 우울감이 스물대는 밤이다.

이럴 땐 미드를 시청하고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고다. 나는 배민앱을 찾아 피자를 주문했다. 두 귀를 현관 벨소리에 집중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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