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받은 배낭 선물

by 여비

"필요하신 분 가져가셔도 됩니다" 강쥐와 아침 산책길에 아파트 출입구에 빨간 등산 배낭이 얌전하게 앉아있다. 배낭 정수리에 흰 종이가 붙여져 있어 가까이 다가섰다. 쪽지에 적힌 글을 보고 배낭 주인이었던 누군가를 생각했다.

또박또박 쓰인 글자엔 망설이고 염려했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아 강쥐를 주위 준 후에 배낭을 집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리 낡은 것 같지도 않고 깔끔한 상태이다. 망설임 없이 집으로 가져왔다.

배낭을 등에 업고 거울을 보다가 문득 국민학교 때 소풍 생각이 났다. 순이 언니 따라서 영등포시장에 **슈퍼에서 초콜릿이 발려진 과자, 아버지가 좋아하는 색이 옅은 파란색의 사이다, 동생과 나눌 수 있게 줄이 두줄로 늘어선 흰 통 안에 사탕, 딱따기 불량식품까지 시장바구니가 목에 차오르게 담긴 까만 실뭉치로 얼겨진 가방이 터질 것 같고 도무도 당당히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과 나란하게 방바닥에 놓인 과자를 보니 소풍가방 생각이 났다. 한 개 밖에 없는 가방을 동생에게 양보를 하면 나는 어디에 맛난 과자와 사이다, 삶은 계란을 싸가지고 소풍을 갈 것인가? 좀 전 까지도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할 생각에 구름 위로 둥둥 떠올랐던 내 맘은 온데 간데없고 속 상한 마음에 소풍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싶었다. 왜, 하필이면 똑같은 날에 소풍을 가는 것인지...

보자기같이 생긴 천, 가방에 들어있는 온갖 먹을거리와 축 쳐진 내 어깨 모양에 사이다병의 밑동이 등줄기에 닿으니 기분이 고약했다. 동생의 노란 머리를 휘감은 닉꾸샤꾸는 총총 걷는 다리 위를 넘실댄다. 쫄랑거리는 양갈래 머리도 신이 나고 콧노래에 다리 장단을 해대는 동생이 밉다. 힘없이 뒤를 졸졸 따라가는 나는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 창피한 마음에 동생 앞을 쏜살같이 넘어 학교에 뛰어갔다. 맘 속에 차오르는 분노는 거침없이 원망을 넘어 소풍을 안 가기로 정했다. 그날 나는 학교 뒷산에서 혼자 싸가지고 간 김밥과 사이다를 눈물을 삼키며 먹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갔다.

훗날, 내가 소풍을 가지 않았던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서도 아버지는 나를 혼내시지 않았고 여러 날이 지난 후에 동생이 어깨에 걸고 요래 조래 살펴보던 똑같은 닉꾸샤꾸를 사 왔고 나는 동생을 밀쳐내며 거침없이 배낭을 낚아챘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 몫의 그, 배낭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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