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베토벤 안경을 쓰시고, 멋진 파이프 담배를 입가에 물고 계셨다.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치고 가녀린 활을 당기시면 위, 아래로 미끄러지 듯 움직이는 손동작에 빗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것 같은 맑은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내가 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는 글과 숫자를 가르쳤다. 누런 갱지에 검은색 두꺼운 표지가 앞 뒤로 덮인 연습장도 직접 만들었다. 연필도 직접 깎아주시고, 줄을 그어 모눈종이처럼 그려 주셨다. 자로 대고 그린 네모칸엔 아버지가 써 주신 내 이름이 똑바로 앉아있었다. 숫자 또한, 정성스럽게, 중앙에 앉은 마루의 쌀 뒤주처럼 가운데 꼭 꼭 눌러 쓰셨다. 아버지와 함께 공부했던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입학하던 해는 1968년도였다. 그 시절엔 한글을 모르고 입학한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포플러 나무들이 둘러싸인 운동장은 한참을 걸어가도 멀기만 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한 무리가 긴 줄을 이어서 있고 그옆에는 할머니, 가족들인 듯한 사람들이 마치 동네 장터에 나온 것 처럼 부산스러웠다.
나는 외할머님과 함께 입학식에 갔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와 손잡고 왔다. 나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풀이 죽었다. 한껏 들뜬 아이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외할머님의 사투리도, 헝클어진 머리 모양도, 어색하게 부여잡은 손목도 뿌리치고 싶었다.
선생님의 앞가슴엔 비닐 테이프가 달려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분홍, 초록의 색깔 리본이 커다랗게 흰 수건 앞에 달려 펄럭댔다. 우리들의 가슴에도 옷핀으로 색색의 리본을 달았다. 자기 가슴에 달린 리본 색깔과 같은 색 리본을 달고 있는 분이 담임 선생님이셨다. 나는 키가 작았다. 사람들 틈에 끼어 맨 끝에 가서 섰다. 앞줄부터 이어진 반 배정은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나는 빨간 운동화를 발길로 툭툭 차면서 한참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내 앞을 그냥 지나쳐서 맨 앞에 선 아이에게로 가셨다. 외할머니와 나는 한참을 우두망찰 서 있었다.
나는 빛의 속도로 선생님께 달려 나갔다. "선생님! 제 이름을 못 들었는데요? 부르셨나요? 이름이 뭐지?...
유 **입니다. 반을 잘못 찾아왔구나."
손가락으로 가리킨 내 앞가슴엔 분홍 리본이 펄럭댔다. 선생님의 앞가슴엔 빨간 리본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기 까지 했다. 그무렵
친할머님은 아들 타령을 하셨다. 엄마는 내 밑으로 내리 여자동생 셋을 낳았다. 지금도 안방에 누워 계셨다. 빨간 이불로 감싼 동생은 엄마 곁에서 잠을 잔다. 넷째까지 여자*를 낳았다고 친할머님은 화를 참지 못하고 원주로 가버리셨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화신백화점까지 가셔서 가죽 책가방, 소라색 리본이 허리에 달린 원피스, 소공녀 책에서 본 노란 머리의 빨간 운동화를 사 주셨다.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가죽 책가방을 메보았고, 앞 뒤로 엉덩이를 흔들어 대었었다. 그때 나는 밤낮으로 울어대는 넷째 동생도, 내 손목을 부여잡고 입학실엘 가신 외할머니도 미웠었다. 더욱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분홍빛 리본과 빨강 빛 리본을 짝 맞추지 못해 반을 잘못찾은 실수였다. 책가방을 둘러메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생각 나지 않는다. 다만 대문을 박차고 마당을 뛰어넘어 마루에 올라서서 안방 문을 걷어차며 엉엉 울어버렸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 높여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