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파티

by 여비

툇마루 한편에 배불뚝이 장바구니가 놓여있다. 대파잎이 삐져나온 것이 시어머님의 급한 성격이 보인다. 나는 장바구니 안에서 마른미역, 신문지에 둘둘 싸인 소고기, 시금치, 당면을 꺼냈다.

시어머님은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기신다. 시댁 텃밭에는 다디단 맛을 입은 가을 무가 알토란같이 자라고 초록의 잎들로 둘려진 배추가 텃밭에 옹기종기 앉아있다. 가을걷이 끝내고 곳간에 그득히 쟁여놓은 곡식 자루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아비 생일 때는 초봄이라 묵은 것 털어먹고 보리 닥닥 긁어 밥했었다. 식구는 좀 많았어야지. 복 많은 울 애기는 늦가을이 생일이니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라고 시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주말을 맞아 두 딸들이 집으로 왔다. 자그마한 몸보다도 빨간 장미 송이들이 먼저 들어왔다. 어림잡아 백송이는 됨직하다.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호사를 느끼게 하려 한 것 같다. 나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으나 이내, 입속에 사탕을 문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휘둥그레 눈을 떴다가 반박의 표정을 보이느라 살짝이 실눈을 째렸다. 내자식들 주머니가 홀쭉해질까봐 노파심이 작동한것이다. 생일이 뭐 대수라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유**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짝짝짝짝 박수를 치고 강아지까지 덩달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짖어댄다. 깔깔대고 하하 웃고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한 마음이다. 입술을 쭉 빼어 후우소리를 내어 초를 불고 하트 쵸코렛을 떼어내고 커팅도 했다. 사과 모양 접시에 담긴 하얗고 몽글한 케이크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식성이 좋아서 잡숫는 것 을 좋아하신 시어머님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호탕한 웃음소리도 생각났다. 작년 이맘 때까지도 내 손을 잡고 좋아라 하셨는데...


나는 유년 시절에 생일 밥상을 못 받아봤다. 엄마 손길 대신에 순이 언니가 나를 돌보고 씻기고 먹였다. 먼 친척인 순이 언니는 나보다는 연애사업이 바빠 여드름투성이의 얼굴에 더 신경을 썼다. 아버지의 소개로 만난 안경잡이 아저씨가 건네주는 노란 국화 한 송이가 나보다 더 예뻤다. 머리를 빗길 때에도 아저씨 얘기를 하고, 받아쓰기 문제를 불러줄 때도 건성건성, 산수 숙제를 검사해 도장을 찍을 때도 대충대충이었다. 한 달에 두 번 서울로 올라오시는 친할머니도 내게 무덤덤하기는 매 한 가지여서 필요한 생필품을 가져다 놓기가 바쁘게 원주로 가 버리셨다. 나와 순이 언니만 매일마다 밥상을 마주했다. 성의 없이 대충 해주는 밥은 맛이 없었다. 내가 우리 반 교실에서 맨 앞줄 왼쪽 창가에 앉는 이유도 맛없는 밥 때문이었다. 도시락 반찬도 염소똥 같은 콩장, 삐적 마른 멸치꽁댕이, 그것이 전부였다.

가로등도 깜박이며 졸고 있는 새벽이나 돼서야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셨다. 술에 취해 온몸이 흙범벅이 된 채 마루에 누워 계신 것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술병으로 엉망이 된 것은 아버지의 몸뿐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어른들의 생활 모습도 그러했다. 나는 아버지와 순이 언니 곁에 지남철같이 꼭 붙어있고 싶었다. 연습장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면 컴퍼스를 사용해 정확히 그렸다. 내가 원하는 엄마, 아버지, 순이 언니를 동그라미 안에 넣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옥수숫대처럼 쑥쑥 자라서 빨리 여고생이 되고 막내 고모처럼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1987년 1월 18일 결혼을 했다. 나에게 엄마 같은 시어머님과 남편이 생겼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포근한 둥지를 가진 것이 더없이 행복했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남편을 알아가는 과정도 무시하고 덤비듯이 가정을 꾸렸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지 못했다. 전쟁 같은 돈벌이와 바쁜 일상은 당찬 나를 만들었다. 똑순이의 기질도 시어머님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본보기로 배워갔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곧은 정절도 덤으로 배워갔다. 시어머님은 나에게 '애기 천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어머님을 때론 이해 못 해 애를 먹기는 했지만 존경했다. 올봄 시어머님께서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영영 이별은 했지만 쩌렁쩌렁한 음성을 듣고, 몽당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잰걸음으로 집안 청소를 하시는 모습을 그려본다. 여전히 나는 시어머님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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