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by 여비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한강변을 걷다 뛰다 하는 것을 좋아한다. 촉촉한 향기가 물 냄새를 머금고 내 볼과 코 끝에 스치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창조주의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이슬먹은 풀을 밟는 것을 좋아한다. 발끝에 닿는 땅의 기운은 내가 살아 움직이며 생산성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 같아 두 다리에 힘이 주어진다.

나는 햇빛의 반사되어 색색의 태양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강변에 찰싹거리는 너울 빛이 이쪽저쪽으로 흩어지면 나의 두 눈은 빛을 쫓아 이리저리 눈을 휘둥그레뜨게 한다. 마치 유년시절 막다른 골목을 가고도 술레를 못 찾았을 때처럼 열심이다. 나는 쪽빛의 가을 하늘을 좋아한다. 하늘 위에 잿빛 구름들이 흰 구름들 곁에 어우러져있고 흰 구름은 마치 제왕처럼 몸을 늘이고 앉아있다.

나는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제길을 아는 양 일정하게 흘러가는 순리가 우리네 사는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엔 죽음으로 간다는 것 같은 명제이다. 잔잔하게 소리 없이 정지된 것 같지만 고요 속에 행동이 있어 물결을 이루니 율동적이라 좋다.

흐르는 물속으로 잠수하듯 기억속으로 생각을 침잠해 본다. 아득히 산골짝에 저녁연기가 피어오를 즈음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 도망치어 뛰어나왔던 곳에 신발 한 짝만 꿰고 미친 듯이 달아났었다. 눈물바람이 된 얼굴엔 바람이 스쳤고 발바닥의 피떡을 가만히 살펴봤었다. "어른이 어서 되어야지" 두 손을 불끈 쥐었었다.


식구들의 먹을 것을 장만하는 내 두 손을 좋아한다. 도마질 소리가 신나게 날 것이다. 배가 두툼한 고등어를 도마에 올려놓고 푸른색이 도는 등을 가만히 쓸어본다.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무를 넓적하게 썰어 고춧물을 듬뿍 입힌 간장조림을 한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매실청으로 담아두고 후추는 통후추를 넣는다. 한상 차린 상 위에는 잘 익은 알타리김치, 갓김치, 햇김장을 한 굴까지 넣은 배추김치까지있어 입속에 침이 고인다. 밥상 앞에 모인 가족들 웃음에 절로 피곤이 가신다. 내 식구가 나를 힘나게 해주어 일상의 고단함을 뛰어넘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내 손으로 장만한 집이 좋다. 1층엔 음향기기를 배경으로 청음실이 완벽하게 앉은 갤러리로 지었다. 2층엔 나만을 위한 서재가 너무 크지도 않게 책동산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책, 공부를 위한 책, 인문학, 교양서적, 그리운 시간들을 찾을 수 있는 내 작가노트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여태껏 엄마로 살아왔다. 단 1평의 공간도 나만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 부엌에서의 가사를 멈추는 방, 고요 속으로 몰입하고 침잠할 수 있는 방,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방, 그리고 "쓰기"로 생각을 풀어내는 방이다.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추억 속에서 되새겨보기, 아픈 상처, 분노, 슬픔, 상실의 쓰다듬기, 그 놀이터에 모두 풀어 버리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다. 마당가에 조롱한 화초들이 웃고 손바닥만 한 텃밭엔 서너 장의 깻잎과 두서너 포기의 상추가 자라나는 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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