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드디어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많은 배움들 중 이것만은 배우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혼자서 자동차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많이 두려워서입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는 좋아하는 글을 읽고 필사를 하며 음악을 듣습니다. 창문을 열고 구름이 하늘 위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두 눈에 담습니다. 세상은 분주하고 혼란스럽고 바쁘게 돌아갑니다. 내가 맞서기엔 힘든 것들이 너무도 많아 피하기만 했습니다. 체육시간에 공을 피해야 살아남는 피구처럼 말입니다. 용케도 지금까지 어쩌면 잘 피했는지 모릅니다. 두려움 속에 많이도 떨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두려움을 잠시 지나치고 아무렇지 않게 보내 버릴 수 있었습니다.
비가 가늘게 옵니다. 실비오는 소리에 새벽잠을 깼습니다. 밤새 어제 못다 한 숙제를 꿈속에서는 끝마쳤습니다. 비록 꿈이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덩달아 머리도 맑아졌습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았습니다. 신이 돼보고 싶었던 인간과 인간을 동경했던 괴물의 복수가 저의 심박수를 빠르게 뛰게 했습니다. 탄력을 받아 점프를 하는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빠른 슛동작을 그려봅니다. 나는 배우가 되어 마음으로나마 복수에 성공을 응원합니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외로움, 괴로움이 온몸을 감았을 겁니다. 나는 운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남편을 만나서 혼자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당연히 나를 대신해 모두 해 주었습니다. 나는 남편 주위만 뱅뱅 거리며 돌았습니다. 관성적으로 시간을 먹어 버리고 무위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몸이 안 좋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약을 건네게 되는 날도 자주 있어 서서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무엇이든지 자기만의 고집대로 합니다. 나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순서, 새로운 물건의 인수, 결재, 재고처리등 모든 것을 혼자서 합니다. 다른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 감정은 무시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뜻대로 행동했고 부모님의 도움은 없었습니다. 거침없는 행동력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지개 꿈꾸는 것 같은 허세는 부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바라던 인생이었습니다. 눈부신 인생이었지만 같이 하는 게 또 한 편으론 힘들었습니다. 그런 남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는 마음의 벽을 쌓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멀리 두고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점점 마음을 폐가로 만들었습니다. 상처를 폭발해야 했습니다.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내게 정신과에 다니라고 권유를 했고 내 발로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약을 받아오던 날, 아침햇살이 내 얼굴을 간질었습니다. 버스 안에는 각각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나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바로 뒤에 앉아 운전하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다보았습니다. 두 손동작은 내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 같았습니다. 귀에 들리는 남편의 잔소리도 같이 엔진소리와 맞물려 들려왔습니다.
"요즘 운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남편의 설득도 생각났습니다. 차의 바닥으로 전해지는 부릉소리에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나는 한없이 바쁘기만 했던 지난날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나 봅니다. 헛된 생각 안 해봤고 매사에 열심이었고 내 식구들도 배불리 먹였고 등록금 밀리지 않았으니깐요. 손을 부지런히 놀려 윤이 반짝거리는 거실바닥에 보람을 느꼈고 늘어나는 통장숫자에 만족했습니다. 남편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그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못마땅함이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습니다. 내가 자유롭도록 나를 묶어두지 말아 달라고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격한 언성, 재촉하며 핀잔을 주며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커다란 빌딩이 나를 밀어 내는것 같습니다. 갓길에서 초라하게 엉성하게만 느껴집니다. 나는 무심한 상념을 꿰고 손가방 안에든 약봉지를 꺼내 보았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우울증도 고치고 내 이야기도 전문의가 들어주는데 왜 아직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이동을 하는가? 생각을 멈추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생각합니다. 남편에게 느꼈던 서운한 말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나태를 꾸짖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파트를 사이에 둔 차선위에서 홀가분하게 핸들을 잡고 있을 나! 발끝으로 지그시 엑셀을 누르고 있을 나! 전방을 주시하며 직진 신호를 기다릴 나를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