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는 힘들다. 지겹고 따분하다. 노곤한 몸을 누이려고 소파에 잠시 걸쳐 앉아있어도 주방의 어질러진 서열 없는 일거리들이 널려 있을 때처럼, 요행을 바라고 요리조리 4문항중에 그 것 하나를 찾지 못한 안타까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벗어난 수위 높은 컴퓨터작업처럼 재미도 없다. 언제까지 이 돈벌이란 놈하고 힘겨루기를 해야 할까?
상대적으로 부자, 가난뱅이란 이야기의 기본 속에 나는 어느 쪽일까?
부(否)라! 시인 조지훈 님이 말씀하셨다. 으 음 읖조리며 머리를 갸웃거려본다. 나는 학창 시절을 빼고는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까지도 유효할 것이다. 일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급으로 돈을 받는다. 받는 돈이 결코 많지 않지만 돈을 받을 때는 힘이 생긴다. 통장에 찍힌 000 숫자에 입이 헤 벌어진다. 기특한 숫자를 보며 뭘 살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가 개운해지기까지 한다. 이처럼 돈의 힘은 입속에 침이 고이고 생각이 맑아지고 행동이 민첩해지기까지 한다.
남편이 장가들 때 나의 아버지께 '밥 안 굶길 자신 있습니다'. 시원하고 호기 어린 답이었다. 나는 믿음직스러운 내 남자로 나의 편이 될 것을 아버지께 같이 거들었었다. 호박마차를 타고 12시면 집으로 달려오는 신데렐라처럼 기뻤다. 주위의 부러운 시선과 말들 속에 우쭐하기도 했었다. 훤칠한 키, 준수한 외모, 거기에 까만 장지갑에 현금이 가득 차게 들어있고, 흰색의 자기 자동차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횡재를 했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언제나 반대일 확률이 많다. 그리고 이 세상은 내 편보다 남의 편이 많더라는...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고 허리 필새 없이 돈을 만지려고 애를 썼다. 두 딸을 부족함 없이 양육하려고 발버둥 쳤다. 집 한 칸 늘려보려 1번의 계주노릇도 하고 우리 농산물 직거래로 건너방구석에 참기름, 들기름박스를 쟁여두고 교회집사님들한테 아름아름 팔기도 했다. 돈 없어서 남편 구두축이 개의 혓바닥 늘어진듯한 곳을 보며 요다음계돈 타면 남편의 구두부터 사야지 하며 맘 속으로 하얀 다짐을 했었다.
티브이를 보더라도 경제뉴스를 심도 있게, 물가는 고공행진하고 모두 오른 생필품가격에 실눈을 했고 나와 남편의 월급만 오르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놈의 돈! 개도 안 물어 간다는 돈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한 걸음씩 때론 껑충 뛰어서 숨이 차도록 말이다.
30년 지기 가난했던 반지하방의 나란한 골목길 친구들을 만났다. 우린 35년 전 큰딸 기저귀 빨아 지하에서 세 칸을 넘어 옥상의 빨래들을 널다가 만났다. 펄럭대는 기저귀를 털어 널며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서 꺼내놓고 월급얘기, 주택부금얘기, 시동생 등록금얘기 등 모두 돈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의 어려움은 모두 돈 때문이었다.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부부싸움의 원인도 돈이었다.
"왜 밥만 먹으면 나가서 열심히 돈 버는데 우린 무슨 이유로 돈이 없는 거야?" 하며 악다구니를 했었다. 나는 모질고 상스러웠다. 두 눈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머리를 흔들어대었다. 허공에 대고 원망과 한탄을 했었다. 참으로 맥없는 무능에 비참했었다.
나는 돈이 없어도 혼자서 유유자적 배고픔의 주림을 참으며 살 수는 없었다. 생각만으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또 푸른 하늘을 보며 공중의 새를 보며 멋진 날갯짓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추하다.
돈을 소중히 여기고 돈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돈이 주는 성취감과 돈이 주는 안도감, 돈이 주는 불안감, 절망감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