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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 Mar 10. 2023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구나. 나는 시간을 먹어 치우는 로봇 인가보다. 작년 이즈음 전부터 시어머님은 서서히 나에게 죽음에 관해 종종 이야기를 했었다. 무심히 넘겨버리고 일상을 하던 대로 보냈었다. 정릉천의 하늘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다녔었던 길, 시장통에서 찹쌀 순대와 배기를 한 손에 사들고 다른 한 손에는 녹차가루로 덧입힌 카스텔라를 들고 종종 대어 걷던 길, 건너편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시는 시어머님의 커다랗고 둥근 맘을 안고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던 길, 인공의 조경들 사이로 졸졸거리는 시냇물에는 천둥오리 두 마리가 나를 맞는 것처럼 울퉁 절퉁 앞뒤를 따른다.     

 나는 지금 시어머님의 기일을 맞아 동서집으로 가는 중이다. 시간에 맞추어 오라 했지만 일부러 두 시간을 일찍이나 집에서 출발했다. 시어머님의 가는 길을 내 정성과 온 마음을 다하지 못함을 이렇게 도 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곱씹어 지난 시간을 원숭이가 자기 새끼의 몸을 뒤져 해로운 벌레를 잡듯이 하고 싶은 건가? 귀에 들리는 듯한 먼 소리와 아득한 환영들을 마음 정지하듯 멈춰 버리고 싶은 걸까? 다가서기보다는 우물쭈물 머뭇대기를 더 많이 했던 날들,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었던 말들보다는 반복대는 지겨움으로 무시했던 날들, 지난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을 쏟아냈던 처절한 심정을 외면했던 날들...

 나의 매몰찬 이기심이 봄바람처럼 쌀쌀하게 스친다. 길 양쪽으로 뻗은 가로수는 하늘아래 앙상하게 가지가 뻗어있고 보이는 사람들은 제 각각 바쁜 길을 재촉할 뿐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커다랗게 적힌 나무 표지판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라고 적혀있다. 내 눈에 펼쳐진 이 표지판은 내 마음을 때렸다!


 신혼의 달방 생활을 벗어나려 시집으로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한 협동생활이 되었다. 일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았고 집에서도 가정교육, 가사생활등 모두 서투르고 엉망이었고 더우기 시어머님의 눈에는 들지 않았다. 나는 매일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해내지 못하므로 마음속이 불처럼 뜨거운 화를 저장했다. 말 수가 없어지고 생활의 활력이 떨어졌으며 몸은 뼈만 앙상했다. 눈물로 하룻밤과 서러움으로 가득한 일기를 한 자 한 자 적어내려 갔다. 시어머님의 억척스러움이 싫었고 가난해서 산동네에 살며 내 딸을 산 밑의 길 건너 아파트가 바라보이는 고가도로 위로 올리고만 싶었다. 여유 없이 마구 달려 번쩍거리는 환한 불빛밑에 다다랐다. 최대한으로 속력만 내다보니 도착지에는 닿았지만 물리적인, 환경적인 쾌척은 아주 멀리에 있었다.     

 불멸의 화가였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마음의 호소, 홀로 있음의 외로움, 상상의 정신세계로 떠나는 방황을 편지로 썼다. 보고 싶은 테오에게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권태, 배고픔, 무명 화가의 서러움을 눈으로는 자연의 사이프러스나무로 때론 노란 집에서 잠시 함께한 고갱, 그리고 모네, 세잔 등... 대화가들의 영혼으로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정을 혼자서 꾸릴 때 퇴근 후에 밥상 보자기를 보고 그 안에 무짠지무침, 물기 먹은 상추, 깻잎들에 울컥 대는 위로들을. 그 밤을 지난 이른 아침에 빨랫줄 위에 널려 있는 흰 양말 두 켤레가 아직 물기를 떨구고 있음을... 물방울은 시어머님의 눈물 같다.

한 때 시어머님의 우렁찼던 음성에 ,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광고 구절은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의 말귀에서, 맛난 음식 앞에서 우리의 지난날들에게 모두 감사하신다는 그 말에, 그리고 숱한 상처로 눈물 떨구며 한 자씩 글쓰기노트에 적고 얼굴을 묻고 잠들던 단칸방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직도 내게 아주 가끔씩 꿈에 보이는 시어머님이 언제나 함께하고 내 고독을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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