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네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우유빛깔처럼 흰 피부에 맑은 마음씨를 가진 천정표 언니시다. 꽃향기만발한 축제 속에 그림같이 펼쳐질 나의 이야기 그럼, 시작할까
오빠, 나 밑으로 남동생들, 그리고 여동생이 한 상에서 밥을 먹고살았지, 부자랄 것도 가난뱅이도 아닌 그냥 그런 데서 동생들과 싸우며 지냈어. 남자들만 학교를 보냈어. 싫다, 좋다 하는 내 말은 귓등으로 듣던 시절말이야. 내가 35년생이니까. 엄마 치마꼬리도 잡을 수 없었어, 논으로 밭으로 내빼는데 뭐 재주 있나. 집안 소지하고 빨래하고 냇가에서 균순이, 산옥이하고 방망이질하고 낄낄대며 수다를 떠는 거지. 열아홉에 한 살 많은 남편과 결혼해 3남매를 키웠어. 남편은 허풍쟁이였어. " 나, 이북에서 살 때 금송아지 메고 살았어." 귀가 쟁쟁해. 눈 발이 터럭비 째듯이 내리는 날 밤에 서울로 찾아들었어. 시어머님, 우리 애들 셋 그리고 영감까지 골방 같은 한 데에 나앉았어. 서울살이는 팔랑개비처럼 싱싱 돌아갔지. 희번덕거리며 정신없이 사느라 생전 미싱을 다 돌리고 또 손 놀 리지 않고 열심히 페달을 밟아댔어. 언덕 꼭대기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 보이는 집을 장만했지. 수돗물도 콸콸 나오고 부엌과 방문을 처벅 대고 돌아쳤어. 신이 났지. 나 혼자서만 뒤뚱대지는 않았어. 시어머님은 황소만 한 눈이 처음엔 무섭더니 그 큰 눈 안엔 정이 한가득하신 분이셨어. 내가 출산을 하자 한 달 동안 꼬박 밥을 해 주셨어. 그런 시어머니 없어. 나는 산후조리를 잘해서 지금도 아픈 데가 없어. 복지관 친구들은 온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하루에 두서너 번은 물에 흠뻑 젖은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기분 나쁘게 전신을 내리누른다고들 해. 지금 내 곁에 계
시면 업고 다닐 거야! 남편?,, 남편은 완고해서 무섭게 굴었어. 아무 때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 앞에서도 불호령을 해댔으니...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사람 비위 맞추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모두 버리고 바람에 날렸지.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꾸면서 어느새 코로나마스크도 끼고 사는 세상도 왔지.
나는 생각해. 어찌 됐든 비와 이슬을 막아주는 집에 살고, 매일 먹을 것이 있는 생활이 가능했으니 고맙고 감사하지.*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가 쓴 문구에 "눈이 보인다.귀가 즐겁다. 몸이 움직인다.기분도 괜찮다.고맙다.라고 말이야.
나는, 한시반시 몸을 놀리지 않고 팔팔하게 골목청소봉사를 십 년도 더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